황제(黃帝)는 중국 전국 시대 이후로 문헌에 등장하는 오제(五帝) 중 첫 번째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세상(중국)을 다스렸다고 설명된다.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라고도 부른다. ‘황제(黃帝)’의 명칭은, 제위시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도교의 시조로도 추앙받고 있으며,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노자와 더불어 실존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며, 생존 시기도 확실하지 않다.《포박자(抱朴子)》에는 황제(黃帝)가 만년에 자기가 직접 죽을 날을 택해 신하들과 사별한 후 교산(橋山)에 묻혔지만, 얼마 후 무덤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는데 무덤 속에 시신은 없고 검과 신만 있었다는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산시성(陝西省) 황링현(黃陵縣) 교산(橋山)에는 황제(黃帝)의 무덤으로 알려진 황릉(黃陵)이 존재하고 1992년 중국 정부에 의해 대규모로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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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제(黃帝)는 중국 전국 시대 이후로 문헌에 등장하는 오제(五帝) 중 첫 번째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세상(중국)을 다스렸다고 설명된다.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라고도 부른다. ‘황제(黃帝)’의 명칭은, 제위시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도교의 시조로도 추앙받고 있으며,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노자와 더불어 실존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며, 생존 시기도 확실하지 않다.《포박자(抱朴子)》에는 황제(黃帝)가 만년에 자기가 직접 죽을 날을 택해 신하들과 사별한 후 교산(橋山)에 묻혔지만, 얼마 후 무덤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는데 무덤 속에 시신은 없고 검과 신만 있었다는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산시성(陝西省) 황링현(黃陵縣) 교산(橋山)에는 황제(黃帝)의 무덤으로 알려진 황릉(黃陵)이 존재하고 1992년 중국 정부에 의해 대규모로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에는 '서릉(西陵)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而娶於西陵之女, 이취어서릉지녀)라는 기록이 나온다. '양잠과 방직을 전한 누조(嫘祖)는 황제(黃帝)의 정실 부인이 되었다'(嫘祖爲黃帝正妃, 누조위황제정비)라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무덤은 후베이성(湖北省) 이창시(宜昌市, 의창시) 시링구(西陵区, 서능구)에 위치해 있다.
  •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는 중국 전국 시대 이후로 문헌에 등장하는 오제(五帝) 중 첫 번째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세상(중국)을 다스렸다고 설명된다. ‘황제(黃帝)’의 명칭은, 제위시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도교의 시조로도 추앙받고 있으며,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노자와 더불어 실존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며, 생존 시기도 확실하지 않다.《포박자》(抱朴子)에는 황제(黃帝)가 만년에 자기가 직접 죽을 날을 택해 신하들과 사별한 후 교산(橋山)에 묻혔지만, 얼마 후 무덤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는데 무덤 속에 시신은 없고 검과 신만 있었다는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산시성(陝西省) 황링현(黃陵縣) 교산(橋山)에는 황제(黃帝)의 무덤으로 알려진 황릉(黃陵)이 존재하고 1992년 중국 정부에 의해 대규모로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에는 '서릉(西陵)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而娶於西陵之女, 이취어서릉지녀)라는 기록이 나온다. '양잠과 방직을 전한 누조(嫘祖)는 황제(黃帝)의 정실 부인이 되었다'(嫘祖爲黃帝正妃, 누조위황제정비)라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무덤은 후베이성(湖北省) 이창시(宜昌市, 의창시) 시링구(西陵区, 서능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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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제(黃帝)는 중국 전국 시대 이후로 문헌에 등장하는 오제(五帝) 중 첫 번째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세상(중국)을 다스렸다고 설명된다.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라고도 부른다. ‘황제(黃帝)’의 명칭은, 제위시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도교의 시조로도 추앙받고 있으며,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노자와 더불어 실존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며, 생존 시기도 확실하지 않다.《포박자(抱朴子)》에는 황제(黃帝)가 만년에 자기가 직접 죽을 날을 택해 신하들과 사별한 후 교산(橋山)에 묻혔지만, 얼마 후 무덤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는데 무덤 속에 시신은 없고 검과 신만 있었다는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산시성(陝西省) 황링현(黃陵縣) 교산(橋山)에는 황제(黃帝)의 무덤으로 알려진 황릉(黃陵)이 존재하고 1992년 중국 정부에 의해 대규모로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는 중국 전국 시대 이후로 문헌에 등장하는 오제(五帝) 중 첫 번째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세상(중국)을 다스렸다고 설명된다. ‘황제(黃帝)’의 명칭은, 제위시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도교의 시조로도 추앙받고 있으며,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노자와 더불어 실존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며, 생존 시기도 확실하지 않다.《포박자》(抱朴子)에는 황제(黃帝)가 만년에 자기가 직접 죽을 날을 택해 신하들과 사별한 후 교산(橋山)에 묻혔지만, 얼마 후 무덤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는데 무덤 속에 시신은 없고 검과 신만 있었다는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산시성(陝西省) 황링현(黃陵縣) 교산(橋山)에는 황제(黃帝)의 무덤으로 알려진 황릉(黃陵)이 존재하고 1992년 중국 정부에 의해 대규모로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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