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한(洪鳳漢, 1713년 ~ 1778년)은 조선 말기의 대신으로,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며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장인이다.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고, 음보로 참봉이 되었다.(여러번 낙방하였다기엔 1735년 혜경궁이 태어나던해 성균관출석점수 미비로 5년간 과거응시자격이 금지되었고 5년후 아버지 홍현보가 사망했기때문에 3년간 과거를 볼수없었음) 딸이 세자빈으로 뽑힌 이듬해인 174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사관이 되었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광주 부윤·어영대장 등을 지내고 좌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1761년(영조 37년) 세자의 평양 원유사건으로 이천보, 민백상 등이 갑자기 의문의 최후를 맞이하자 일약 승진,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그 뒤 영의정에 재직 중 사도세자의 처형을 목격하였으나 반대하지 않았다.영조의 탕평책에 부응하여 당쟁의 폐해, 인재의 발탁 등의 내용을 담은 시무 6조를 제시하는 등 국정 쇄신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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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봉한(洪鳳漢, 1713년 ~ 1778년)은 조선 말기의 대신으로,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며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장인이다.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고, 음보로 참봉이 되었다.(여러번 낙방하였다기엔 1735년 혜경궁이 태어나던해 성균관출석점수 미비로 5년간 과거응시자격이 금지되었고 5년후 아버지 홍현보가 사망했기때문에 3년간 과거를 볼수없었음) 딸이 세자빈으로 뽑힌 이듬해인 174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사관이 되었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광주 부윤·어영대장 등을 지내고 좌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1761년(영조 37년) 세자의 평양 원유사건으로 이천보, 민백상 등이 갑자기 의문의 최후를 맞이하자 일약 승진,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그 뒤 영의정에 재직 중 사도세자의 처형을 목격하였으나 반대하지 않았다.영조의 탕평책에 부응하여 당쟁의 폐해, 인재의 발탁 등의 내용을 담은 시무 6조를 제시하는 등 국정 쇄신에 노력하였다. 영조의 탕평을 따르는 탕평파의 우두머리였고 노론측에서는 노론의 당론을 외면하고 임금의 뜻을 쫓아 아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는 익여(翼汝), 호는 익익재(翼翼齋), 시호는 익정(翼靖)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 홍봉한(洪鳳漢, 1713년 ~ 1778년)은 조선 말기의 대신으로,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며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장인이다. 당색으로는 노론의 당원이었다. 딸이 세자빈으로 뽑힌 이듬해인 174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사관이 되었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광주 부윤·어영대장 등을 지내고 좌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1761년(영조 37년) 세자의 평양 원유사건으로 이천보, 민백상 등이 갑자기 의문의 최후를 맞이하자 일약 승진,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그 뒤 영의정에 재직 중 사도세자의 처형을 목격하였으나 반대하지 않았다.영조의 탕평책에 부응하여 당쟁의 폐해, 인재의 발탁 등의 내용을 담은 시무 6조를 제시하는 등 국정 쇄신에 노력하였다. 영조의 탕평을 따르는 탕평파의 우두머리였고 노론측에서는 노론의 당론을 외면하고 임금의 뜻을 쫓아 아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도세자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홍계희, 김한구, 김구주, 정후겸 등과 결탁하여 사도세자를 공격하는 이복 동생 홍인한을 막지도 않았고, 사도세자 공격에 가담한 아들 홍낙임을 막지도 않았다. 조선 고종고종 때 사도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되면서 홍봉한도 부원군의 증직이 내려져 영풍부원군에 추봉되었다.자는 익여(翼汝), 호는 익익재(翼翼齋), 시호는 익정(翼靖)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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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는 익여, 호는 익익재, 시호는 익정
  • 자는 익여, 호는 익익재, 시호는 익정, 작위는 영풍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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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현보, 풍천 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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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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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신,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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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13 (xsd:integer)
prop-ko:친척
  • 사위 사도세자, 외손 정조대왕, 외손 의소세손, 동생 홍인한, 사촌형 홍상한, 백부 홍석보, 8촌형 홍창한, 처남 이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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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봉한(洪鳳漢, 1713년 ~ 1778년)은 조선 말기의 대신으로,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며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장인이다.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고, 음보로 참봉이 되었다.(여러번 낙방하였다기엔 1735년 혜경궁이 태어나던해 성균관출석점수 미비로 5년간 과거응시자격이 금지되었고 5년후 아버지 홍현보가 사망했기때문에 3년간 과거를 볼수없었음) 딸이 세자빈으로 뽑힌 이듬해인 174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사관이 되었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광주 부윤·어영대장 등을 지내고 좌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1761년(영조 37년) 세자의 평양 원유사건으로 이천보, 민백상 등이 갑자기 의문의 최후를 맞이하자 일약 승진,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그 뒤 영의정에 재직 중 사도세자의 처형을 목격하였으나 반대하지 않았다.영조의 탕평책에 부응하여 당쟁의 폐해, 인재의 발탁 등의 내용을 담은 시무 6조를 제시하는 등 국정 쇄신에 노력하였다.
  • 홍봉한(洪鳳漢, 1713년 ~ 1778년)은 조선 말기의 대신으로,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며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장인이다. 당색으로는 노론의 당원이었다. 딸이 세자빈으로 뽑힌 이듬해인 174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사관이 되었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광주 부윤·어영대장 등을 지내고 좌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1761년(영조 37년) 세자의 평양 원유사건으로 이천보, 민백상 등이 갑자기 의문의 최후를 맞이하자 일약 승진,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그 뒤 영의정에 재직 중 사도세자의 처형을 목격하였으나 반대하지 않았다.영조의 탕평책에 부응하여 당쟁의 폐해, 인재의 발탁 등의 내용을 담은 시무 6조를 제시하는 등 국정 쇄신에 노력하였다. 영조의 탕평을 따르는 탕평파의 우두머리였고 노론측에서는 노론의 당론을 외면하고 임금의 뜻을 쫓아 아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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