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태영(咸台永, 1873년 10월 22일 ~ 1964년 10월 24일)은 대한제국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종교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1952년 8월 15일부터 1956년 8월 14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대한제국 때인 1898년 법관양성소 를 졸업하고 한성재판소에서 검사시보로 법관 근무를 시작했다. 한성재판소 판사 당시에는 독립협회 사건으로 체포된 인사들에 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렸으며, 이 인연으로 훗날 이승만의 지지를 받고 부통령이 되기도 했다.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담에 보내는 독립탄원서를 작성했고 3·1운동 당시 중앙지도체 인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1919년 3·1 운동 거사 직전 비밀연락에 참여하였으며 3·1 운동에는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이후 목회자로 사역하다 해방 뒤,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PropertyValue
dbpedia-owl:abstract
  • 함태영(咸台永, 1873년 10월 22일 ~ 1964년 10월 24일)은 대한제국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종교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1952년 8월 15일부터 1956년 8월 14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대한제국 때인 1898년 법관양성소 를 졸업하고 한성재판소에서 검사시보로 법관 근무를 시작했다. 한성재판소 판사 당시에는 독립협회 사건으로 체포된 인사들에 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렸으며, 이 인연으로 훗날 이승만의 지지를 받고 부통령이 되기도 했다.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담에 보내는 독립탄원서를 작성했고 3·1운동 당시 중앙지도체 인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1919년 3·1 운동 거사 직전 비밀연락에 참여하였으며 3·1 운동에는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이후 목회자로 사역하다 해방 뒤,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정부수립 후 1949년 제2대 심계원장과 1951년 한신대학교 학장을 지냈으며, 1951년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1952년의 정부통령 선거 때 제3대 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부통령 퇴임 후에는 한신대학교 이사장을 지냈고 1960년에는 이승만 환국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아호는 송암(松岩). 본관은 강릉(江陵). 함경북도 무산 출생이다.
dbpedia-owl:birthPlace
dbpedia-owl:deathPlace
dbpedia-owl:education
dbpedia-owl:party
dbpedia-owl:religion
dbpedia-owl:residence
dbpedia-owl:wikiPageDisambiguates
dbpedia-owl:wikiPageID
  • 86830 (xsd:integer)
  • 413753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Length
  • 188 (xsd:integer)
  • 17467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OutDegree
  • 2 (xsd:integer)
  • 429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RevisionID
  • 4654972 (xsd:integer)
  • 14622548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WikiLink
prop-ko:wikiPageUsesTemplate
prop-ko:거주지
  • 서울특별시
prop-ko:그림
  • Ham Tai-young.jpg
prop-ko:그림설명
  • 1949 (xsd:integer)
prop-ko:대수
  • 2 (xsd:integer)
  • 3 (xsd:integer)
prop-ko:별명
  • 아호는 송암.
prop-ko:본관
prop-ko:부모
  • 아버지 함우택
  • 어머니 원주 변씨
prop-ko:사망원인
  • 병사
prop-ko:사망지
  • 서울특별시
prop-ko:이름
  • 咸台永
  • 함태영
prop-ko:임기
  • 1949 (xsd:integer)
  • 1952 (xsd:integer)
prop-ko:전임자
prop-ko:정당
  • 무소속→독립촉성중앙회→자유당→무소속
prop-ko:종교
prop-ko:직업
  • 법조인, 정치인, 독립운동가, 목회자
prop-ko:직책
prop-ko:출생일
  • 1873 (xsd:integer)
prop-ko:출생지
prop-ko:학력
prop-ko:후임자
dcterms:subject
rdf:type
rdfs:comment
  • 함태영(咸台永, 1873년 10월 22일 ~ 1964년 10월 24일)은 대한제국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종교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1952년 8월 15일부터 1956년 8월 14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대한제국 때인 1898년 법관양성소 를 졸업하고 한성재판소에서 검사시보로 법관 근무를 시작했다. 한성재판소 판사 당시에는 독립협회 사건으로 체포된 인사들에 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렸으며, 이 인연으로 훗날 이승만의 지지를 받고 부통령이 되기도 했다.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담에 보내는 독립탄원서를 작성했고 3·1운동 당시 중앙지도체 인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1919년 3·1 운동 거사 직전 비밀연락에 참여하였으며 3·1 운동에는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이후 목회자로 사역하다 해방 뒤,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rdfs:label
  • 함태영
owl:sameAs
http://www.w3.org/ns/prov#wasDerivedFrom
foaf:isPrimaryTopicOf
foaf:name
  • 咸台永
  • 함태영
is dbpedia-owl:vicePresident of
is dbpedia-owl:wikiPageRedirects of
is dbpedia-owl:wikiPageWikiLink of
is prop-ko:부통령 of
is prop-ko:선거후 of
is prop-ko:인물 of
is prop-ko:전임자 of
is prop-ko:후보 of
is prop-ko:후임자 of
is foaf:primaryTopic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