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그루지야)-오세티야 충돌 (1918~1920년)은 트랜스캅카스 민주주의 연방 공화국과 그 후 멘셰비키-지배의 조지아(그루지야) 민주공화국에 대항한 조지아(그루지야)의 분리 공화국인 현재 남오세티야 지역의 오세티야인-거주자들이 참전한 그 지역의 조지아인들(그루지야인들)과 오세티아인 공동체에서 몇 천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아픈 기억들을 남긴 연속적인 봉기를 포함했다.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조지아(그루지야)의 멘셰비키 정부는 볼셰비키와 소비에트 러시아와 충분히 공감하던 민족적으로 오세티야인인 사람들에게 중대한 문제를 안겨줬다. 충돌의 숨은 이유들은 복잡했다.캅카스에서 가난했던 오세티야인-거주 지역의 뒤늦은 토지 개혁과 농토의 침해는 민족 불화와 권력 투쟁과 뒤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