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상(張澤相, 1893년 10월 22일 ~ 1969년 8월 1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 해외 유학, 파리위원부와 구미위원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소비에트 연방 등을 거쳐 에든버러대학교에 유학하다가 귀국하였고 청구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경기도 경찰청 경찰부장, 제1관구 경찰청장, 수도경찰청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조선공산당원과 남로당 탄압을 주도하였으며, 해방정국에서 10차례나 테러를 당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직후 제1대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였고 제5차·6차 UN총회의 대표단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52년 5월부터 7월 무렵 피난지인 부산에서 이범석 등과 함께 부산정치파동에 주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1952년 5월 6일부터 1952년 10월 5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국무총리을 역임하였다. 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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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택상(張澤相, 1893년 10월 22일 ~ 1969년 8월 1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 해외 유학, 파리위원부와 구미위원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소비에트 연방 등을 거쳐 에든버러대학교에 유학하다가 귀국하였고 청구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경기도 경찰청 경찰부장, 제1관구 경찰청장, 수도경찰청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조선공산당원과 남로당 탄압을 주도하였으며, 해방정국에서 10차례나 테러를 당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직후 제1대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였고 제5차·6차 UN총회의 대표단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52년 5월부터 7월 무렵 피난지인 부산에서 이범석 등과 함께 부산정치파동에 주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1952년 5월 6일부터 1952년 10월 5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국무총리을 역임하였다. 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과 박정희 정권 기간 중에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자유당을 재건하여 총재가 되었고,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1964년 이후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에 반대하여 윤보선, 장준하, 함석헌 등과 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장을 역임하고, 1969년 신민당 고문이 되었다.해방 정국에서 조선공산당과 남로당 등 좌파 정당과 좌파 정치운동에 대한 구속, 탄압을 가하였으나, 여운형, 이만규, 조봉암 등과는 인간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였다. 진보당 사건으로 조봉암 등이 이적행위자와 공산주의자로 몰리자 조봉암의 석방, 구명운동을 폈고, 법정에서 조봉암을 변호하기도 했다. 학자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이조판서 장석용의 손자이자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張承遠)과 정부인 풍양조씨(豊壤趙氏)의 셋째 아들이었다. 자(字)는 치우(致雨), 어릴 적의 이름은 장삼욱(張三旭), 영문 이니셜은 TS. 호는 창랑(滄浪). 본관은 인동(仁同), 경상도 인동군 북삼면 오태동(현 경상북도 구미시 임오동) 출신이다.
  • 장택상(張澤相, 1893년 10월 22일 ~ 1969년 8월 1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경기도 경찰청 경찰부장, 제1관구 경찰청장, 수도경찰청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조선공산당원과 남로당 탄압을 주도하였으며, 해방정국에서 10차례나 테러를 당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직후 제1대 외무장관을 역임하였고 제5차·6차 UN총회의 대표단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52년 5월부터 7월 무렵 피난지인 부산에서 이범석 등과 함께 부산정치파동에 주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1952년 5월 6일부터 1952년 10월 5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국무총리을 역임하였다.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과 박정희 정권 기간 중에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자유당을 재건하여 총재가 되었고,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1964년 이후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에 반대하여 윤보선, 장준하, 함석헌 등과 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장을 역임하고, 1969년 신민당 고문이 되었다.해방 정국에서 조선공산당과 남로당 등 좌파 정당과 좌파 정치운동에 대한 구속, 탄압을 가하였으나, 여운형, 이만규, 조봉암 등과는 인간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였다. 진보당 사건으로 조봉암 등이 이적행위자와 공산주의자로 몰리자 조봉암의 석방, 구명운동을 폈고, 법정에서 조봉암을 변호하기도 했다. 학자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이조판서 장석용의 손자이자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張承遠)과 정부인 풍양조씨(豊壤趙氏)의 셋째 아들이었다. 자(字)는 치우(致雨), 어릴 적의 이름은 장삼욱(張三旭), 영문 이니셜은 TS. 호는 창랑(滄浪). 본관은 인동(仁同), 경상도 인동군 북삼면 오태동(현 경상북도 구미시 임오동)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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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도 인동군 북삼면 오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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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손자 권대규, 족형 장건상
  • 할아버지 장석용, 형 장길상, 장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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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택상(張澤相, 1893년 10월 22일 ~ 1969년 8월 1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 해외 유학, 파리위원부와 구미위원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소비에트 연방 등을 거쳐 에든버러대학교에 유학하다가 귀국하였고 청구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경기도 경찰청 경찰부장, 제1관구 경찰청장, 수도경찰청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조선공산당원과 남로당 탄압을 주도하였으며, 해방정국에서 10차례나 테러를 당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직후 제1대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였고 제5차·6차 UN총회의 대표단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52년 5월부터 7월 무렵 피난지인 부산에서 이범석 등과 함께 부산정치파동에 주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1952년 5월 6일부터 1952년 10월 5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국무총리을 역임하였다. 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 장택상(張澤相, 1893년 10월 22일 ~ 1969년 8월 1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경기도 경찰청 경찰부장, 제1관구 경찰청장, 수도경찰청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조선공산당원과 남로당 탄압을 주도하였으며, 해방정국에서 10차례나 테러를 당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직후 제1대 외무장관을 역임하였고 제5차·6차 UN총회의 대표단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52년 5월부터 7월 무렵 피난지인 부산에서 이범석 등과 함께 부산정치파동에 주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1952년 5월 6일부터 1952년 10월 5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국무총리을 역임하였다.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과 박정희 정권 기간 중에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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