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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張勉, John Myeon Jang, 1899년 8월 28일 ~ 1966년 6월 4일)은 일제 강점기의 교육자·종교가·번역가·출판인·문인이자 대한민국의 종교가·외교관·교육자·정치인이다. 1956년 5월 15일부터 1960년 4월까지 대한민국의 제4대 부통령이었다. 1950년 11월 23일부터 1952년 4월 23일까지 제2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1960년 8월 19일부터 1961년 5월 17일까지 제7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는 천주교 선교 사목 활동과 언론 활동, 용산신학교, 동성상업고등학교, 계성국민학교, 혜화유치원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광복 이후 정계에 투신하여 1946년 민주의원 의원,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 1948년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에 당선되었으며, 1948년 12월 7일부터 12월 12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3차 UN 총회에 한국대표단 수석대표로 파견되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냈다.1948년 제3차 UN 총회 한국 대표단 수석대표와 1951년 10월 제6차 UN 총회 파견 수석대표로 다녀왔으며, 대통령 바티칸특사를 거쳐 제1대 주미 한국대사 등을 지내고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미국군과 UN군의 한국전 참전을 호소하여 성사시켰다. 1950년 8월과 9월 UN 안보리에서 ‘한국 전쟁은 내전이며 미국과 남한의 북침’이라는 소련 측의 주장을 논파하기도 하였다.1946년 과도입법의원 의원 재직 중에는 국대안(국립대학교 설치안)을 발의하여 성사시켰고, 공창제 폐지를 주창하여 가결시켰다. 1948년 UN 총회에 대한민국의 승인을 요청하는 한국 대표단의 수석대표로 회의에 참석하여 국제사회에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냈고, 한국 전쟁 때는 UN과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을 도와줄 것을 호소하여 지원을 이끌어냈다. 호헌동지회의 조직과 민주당 결성에 참여하였다. 군사정권에 실각한 이후 1990년대부터 재평가 여론이 나타나고 있으며 1999년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장면은 청렴하고 깨끗한 정치가라는 평가와 무능하다는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본관은 인동(仁同)으로 초명은 지태(志兑), 호는 운석(雲石)이다. 종교는 천주교로서 세례명은 ‘요한’(John)이며, 따라서 장 요한으로도 불리고, 장면 스스로도 영문명은 존 면(John Myeon)이라 했다. 일제 강점기의 창씨개명은 ‘다마오카 쓰토무’(玉岡 勉)이다. 한성부 출신으로 그가 성장한 정치적 고향은 인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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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p-ko: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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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장발, 동생 장극, 누이동생 장정혜, 누이동생 장정온, 누이동생 장정량, 조부 장치응, 조모 박 구네곤다, 사돈 한창우, 사돈 친척 김철규 신부, 처질녀 김교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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