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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덕수(張德秀, 1894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2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교육자, 학자, 언론인이다. 일본 유학 후, 귀국 상하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과 상하이 임시정부에 가담하였다가 귀국 후 체포되어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 유배당하였다. 그 뒤 임정 외무부차장 여운형의 통역으로 일본에 다녀오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미국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보좌하였고, 구미위원부 폐지령으로 궁지에 몰린 이승만을 적극 도와주었다. 중일 전쟁 이전까지 합법적인 공간에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운동, 사회계몽운동 등에서 활동하였으나 흥업구락부 사건을 계기로 친일파로 변절했고, 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 시기에 친일 활동에 참여하였다.광복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발기인 성명서 작성을 기초하였다. 이어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를 역임하였다. 신탁통치 찬성과 미소공위 참가 문제를 놓고 김구, 이승만 등과 갈등하다가 제2차 미소공위 결렬 이후, 단정 지지 노선으로 선회했다. 1947년 12월 2일 새벽 서울특별자유시 동대문구 제기동 자택에서 종로경찰서 소속 현직 경찰관 박광옥, 한독당 당원인 교사 배희범 등의 총에 맞고 절명했다.장덕수는 한민당의 정치부장으로 당의 이념을 정립 하는 것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장덕수의 암살을 계기로 김구와 이승만은 결별하게 된다. 2002년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에 포함되었으며, 2009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기관 친일진상규명위 보고서 대상자로 수록되었다. 독립운동가 겸 언론인 장덕준의 동생이자 독립운동가 장덕진의 형이다. 본관은 결성(結城)으로, 호는 설산(雪山), 황해남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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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덕수(張德秀, 1894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2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교육자, 학자, 언론인이다. 일본 유학 후, 귀국 상하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과 상하이 임시정부에 가담하였다가 귀국 후 체포되어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 유배당하였다. 그 뒤 임정 외무부차장 여운형의 통역으로 일본에 다녀오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미국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보좌하였고, 구미위원부 폐지령으로 궁지에 몰린 이승만을 적극 도와주었다. 중일 전쟁 이전까지 합법적인 공간에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운동, 사회계몽운동 등에서 활동하였으나 흥업구락부 사건을 계기로 친일파로 변절했고, 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 시기에 친일 활동에 참여하였다.광복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발기인 성명서 작성을 기초하였다. 이어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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