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의 역사는 선사시대인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삼국시대에 미추홀이 있었다고 추정되며,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영토가 된 뒤로는 매소홀현(買召䑸䎱)으로 불리다가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경덕왕이 소성(邵城)이라 이름지었다. 고려 시대에는 수도인 개성에 인접한 해안 지역으로서 해양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으며, 왕성을 보호할 목적으로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오늘날 부평인 수주(樹洲)에 두었다. 안남도호부는 시흥, 양천, 통진, 김포, 그리고 원인천(原仁川)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소성현(邵城縣)이 속해 있었다. 소성현은 고려 왕실의 외척을 배출하여 계속하여 지위가 격상되었는데, 고려 숙종대에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되었고, 인종대에는 인주(仁州)로, 공양왕 대에는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되었다.

PropertyValue
dbpedia-owl:abstract
  • 인천광역시의 역사는 선사시대인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삼국시대에 미추홀이 있었다고 추정되며,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영토가 된 뒤로는 매소홀현(買召䑸䎱)으로 불리다가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경덕왕이 소성(邵城)이라 이름지었다. 고려 시대에는 수도인 개성에 인접한 해안 지역으로서 해양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으며, 왕성을 보호할 목적으로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오늘날 부평인 수주(樹洲)에 두었다. 안남도호부는 시흥, 양천, 통진, 김포, 그리고 원인천(原仁川)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소성현(邵城縣)이 속해 있었다. 소성현은 고려 왕실의 외척을 배출하여 계속하여 지위가 격상되었는데, 고려 숙종대에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되었고, 인종대에는 인주(仁州)로, 공양왕 대에는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한 후 태조는 다시 인주로 격하하였고, 태종이 고을 사이의 서열을 정비하면서 인천으로 격하하여 오늘날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세조 5년 인천이 소헌왕후의 외가였기에 도호부를 두었다.병자호란 이후 효종은 강화도로 들어가는 우회로를 확보하기 위해 제물진을 구축하였다. 숙종 때에 이르러 제물진 앞 월미도에 행궁을 설치하고 방어를 강화하였다.병인양요, 신미양요와 운요호 사건을 거치면서 인천은 외세와 직접 대면하는 곳이 되었다. 제물포조약이후 6년이 지나 제물포가 개항되고 청나라와 일본의 조계지와 서양 여러나라의 영사관이 제물포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관교동(문학동)에 있던 인천의 중심지가 개항에 따라 사실상 제물포로 옮겨지게 되었다. 제물포를 통한 교역 대상국은 청나라가 압도적이었으나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1906년 인천 내항을 축조하여 항구를 확장하였고,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인천은 일제 식민 통치의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계속되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수산업단지의 역할을 하였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은 인천 곳곳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해방 이후 ‘정명개정위원회’(町名改正委員會)가 구성되어 일본식 이름을 소거하였으나 지금도 만석동, 송도 와 같은 이름이 남아있다.1945년 9월 8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제국이 패망하자 미군이 인천을 통하여 상륙하였다. 1950년 9월 15일 있었던 인천상륙작전은 한국 전쟁의 국면을 크게 전환하였다. 수세에 밀렸던 대한민국은 이 작전을 계기로 공세로 전환하여 북진할 수 있었다.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인천은 수도권의 주요 수출입 항만이 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됨에 때라 인천항은 계속하여 확충되었고, 인천 내항이 맞고 있던 역할은 북항, 연안부두, 남항 등지로 분산 이전되었다. 이로 인해 내항 앞에 형성되어 있던 인천 차이나타운의 화교들은 경제 침체를 맞기도 하였다. 한편, 인천 각지에는 공업단지가 조성되었다.오늘날 인천에 속한 행정구역은 근대 이전까지 전통적으로 서로 다른 지역사를 갖는 여러 지방이 묶여 있다. 원래의 인천은 인천도호부가 있던 문학산을 중심으로 한 남구 남부(옛 인천도호부 부내면) 일대였고,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지는 제물포 지역으로 이동되었다. 이후 부평과 강화 등이 차례로 인천으로 편입되었다. 오늘날 인천은 8개의 구와 2개의 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3년 기준 인구는 약 293만명이다.
dbpedia-owl:wikiPageExternalLink
dbpedia-owl:wikiPageID
  • 1153282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Length
  • 61715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OutDegree
  • 411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RevisionID
  • 14914599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WikiLink
prop-ko:isbn
  • 89 (xsd:integer)
  • 978 (xsd:integer)
prop-ko:url
prop-ko:wikiPageUsesTemplate
prop-ko:
  • 22 (xsd:integer)
prop-ko:기타
  • 김승일 역
prop-ko:연도
  • 1994 (xsd:integer)
  • 1995 (xsd:integer)
  • 2001 (xsd:integer)
  • 2002 (xsd:integer)
  • 2003 (xsd:integer)
  • 2004 (xsd:integer)
  • 2006 (xsd:integer)
  • 2007 (xsd:integer)
  • 2008 (xsd:integer)
  • 2009 (xsd:integer)
  • 2010 (xsd:integer)
  • 2012 (xsd:integer)
  • 2013 (xsd:integer)
  • 200693 (xsd:integer)
prop-ko:저널
  • 기전문화연구
prop-ko:저자
  • 역사학연구소
  • 김육훈
  • 강창일
  • 윤대영
  • 한상일
  • 유승훈
  • 오영태
  • 조우성
  •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 경인일보 특별취재팀
  • 김윤식 등
  • 나채훈 박한섭
  • 나카쓰카 아키라
  • 부르스 커밍스
  • 이준한·전영우
  • 이회한
  •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 인천광역시사편찬위원회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조낙영 외
prop-ko:제목
  •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 근대 일본의 조선 침략과 대아시아 주의
  • 인천역사문화총서 9 - 역주 인천부읍지
  • 인천역사문화총서 39 - Chemulpo, Jinsen 그리고 인천, 외국인 상업세력과 관련하여
  • 인천역사문화총서 54 - 역주 인천과 인천항
  • 인천역사문화총서 34 - 외국인의 기록으로 보는 인천근대
  • 인천역사문화총서 25 - 인천 개항장 풍경
  • 인문학시민강좌 03, 근대제국과 만난 인천:충돌과 변화
  • 부평지역의 지방행정 체제 변천에 관한 연구
  • 인천역사문화총서 30 - 인천 경제의 재조명
  • 인천역사문화총서 26 - 인천/부평/강화/교동/영종 조선시대 인천지역의 생원·진사시 합격자들
  • 격동 한세기 인천이야기, 상
  • 격동 한세기 인천이야기, 하
  • 근대 한국과 일본
  • 동북아의 중심지 인천의 역사와 문화
  • 마주보는 두 역사, 인천과 하이퐁
  •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 아시아 연대와 일본제국주의
  • 인천개항사
  • 인천광역시사 제2권 - 인천의 발자휘
  • 인천아 너는 엇더한 도시?
  • 인천이야기 100장면
  • 인천인구사
  • 인천지역 재정사 연구
  •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
  • 함께보는 한국근현대사
  • 인천역사문화총서 44 - 인천근대건축의 전개과정
prop-ko:출판사
  • 인천광역시
  • 역사비평사
  • 창작과비평사
  • 푸른역사
  • 서해문집
  • 역락
  • 범우사
  • 오름
  •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 글로벌콘텐츠
  • 다인아트
  • 미래지식
  • 인아트
  •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 인천문화재단
  • 후마니스트
prop-ko:
  • 1 (xsd:integer)
dcterms:subject
rdfs:comment
  • 인천광역시의 역사는 선사시대인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삼국시대에 미추홀이 있었다고 추정되며,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영토가 된 뒤로는 매소홀현(買召䑸䎱)으로 불리다가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경덕왕이 소성(邵城)이라 이름지었다. 고려 시대에는 수도인 개성에 인접한 해안 지역으로서 해양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으며, 왕성을 보호할 목적으로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오늘날 부평인 수주(樹洲)에 두었다. 안남도호부는 시흥, 양천, 통진, 김포, 그리고 원인천(原仁川)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소성현(邵城縣)이 속해 있었다. 소성현은 고려 왕실의 외척을 배출하여 계속하여 지위가 격상되었는데, 고려 숙종대에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되었고, 인종대에는 인주(仁州)로, 공양왕 대에는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되었다.
rdfs:label
  • 인천광역시의 역사
owl:sameAs
http://www.w3.org/ns/prov#wasDerivedFrom
foaf:isPrimaryTopicOf
is dbpedia-owl:wikiPageRedirects of
is dbpedia-owl:wikiPageWikiLink of
is foaf:primaryTopic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