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광(李睟光, 1563년 ~ 1628년 12월 26일)은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 문신이자 성리학자, 실학자, 외교관이다. 후대의 남인실학의 토대가 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다. 이수광은 뛰어난 외교력과 문장능력을 인정받아 28세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35세 때 진위사로 명나라 파견되었으며, 49세 때인 1611년에도 중국을 다녀왔다. 당시의 선진국 중국에서 그 문화를 보고 배우는 한편, 세 차례의 사행 기간 중에 베트남·유구· 섬라(시암) 사신들과 교유하면서 국제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이수광에 대한 실록의 졸기(卒記)에는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안남·유구·섬라의 사신들이 그의 시문을 구해보고 그 시를 자기 나라에 유포시키려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수광이 당대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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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광(李睟光, 1563년 ~ 1628년 12월 26일)은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 문신이자 성리학자, 실학자, 외교관이다. 후대의 남인실학의 토대가 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다. 이수광은 뛰어난 외교력과 문장능력을 인정받아 28세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35세 때 진위사로 명나라 파견되었으며, 49세 때인 1611년에도 중국을 다녀왔다. 당시의 선진국 중국에서 그 문화를 보고 배우는 한편, 세 차례의 사행 기간 중에 베트남·유구· 섬라(시암) 사신들과 교유하면서 국제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이수광에 대한 실록의 졸기(卒記)에는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안남·유구·섬라의 사신들이 그의 시문을 구해보고 그 시를 자기 나라에 유포시키려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수광이 당대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이수광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고 국가 증흥을 위한 사회,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무엇보다도 실천, 실용의 학문에 힘썼다. 무실을 강조하면서 실생활에 유용한 학문을 섭렵하고 정리했다. 선현들의 사적을 모으는 한편 이를 현재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했다. "지봉"이라는 호를 딴 《지봉유설》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아들인 이민구(李敏求)의 문하생은 남인의 거두이자 청남의 영수였던 백호 윤휴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서울 출신.
  • 이수광(李睟光, 1563년 ~ 1628년 12월 26일)은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 문신이자 성리학자, 실학자, 외교관이다. 그가 연구했던 자료들은 후대에 이르러 남인실학의 토대가 되었다.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다. 이수광은 뛰어난 외교력과 문장능력을 인정받아 28세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35세 때 진위사로 명나라 파견되었으며, 49세 때인 1611년에도 중국을 다녀왔다. 당시의 선진국 중국에서 그 문화를 보고 배우는 한편, 세 차례의 사행 기간 중에 베트남·유구· 섬라(시암) 사신들과 교유하면서 국제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이수광에 대한 실록의 졸기(卒記)에는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안남·유구·섬라의 사신들이 그의 시문을 구해보고 그 시를 자기 나라에 유포시키려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수광이 당대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실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이수광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고 국가 증흥을 위한 사회,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무엇보다도 실천, 실용의 학문에 힘썼다. 무실을 강조하면서 실생활에 유용한 학문을 섭렵하고 정리했다. 선현들의 사적을 모으는 한편 이를 현재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했다. "지봉"이라는 호를 딴 《지봉유설》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아들인 이민구(李敏求)의 문하생은 남인의 거두이자 청남의 영수였던 백호 윤휴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서울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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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광(李睟光, 1563년 ~ 1628년 12월 26일)은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 문신이자 성리학자, 실학자, 외교관이다. 후대의 남인실학의 토대가 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다. 이수광은 뛰어난 외교력과 문장능력을 인정받아 28세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35세 때 진위사로 명나라 파견되었으며, 49세 때인 1611년에도 중국을 다녀왔다. 당시의 선진국 중국에서 그 문화를 보고 배우는 한편, 세 차례의 사행 기간 중에 베트남·유구· 섬라(시암) 사신들과 교유하면서 국제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이수광에 대한 실록의 졸기(卒記)에는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안남·유구·섬라의 사신들이 그의 시문을 구해보고 그 시를 자기 나라에 유포시키려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수광이 당대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 이수광(李睟光, 1563년 ~ 1628년 12월 26일)은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 문신이자 성리학자, 실학자, 외교관이다. 그가 연구했던 자료들은 후대에 이르러 남인실학의 토대가 되었다.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다. 이수광은 뛰어난 외교력과 문장능력을 인정받아 28세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35세 때 진위사로 명나라 파견되었으며, 49세 때인 1611년에도 중국을 다녀왔다. 당시의 선진국 중국에서 그 문화를 보고 배우는 한편, 세 차례의 사행 기간 중에 베트남·유구· 섬라(시암) 사신들과 교유하면서 국제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이수광에 대한 실록의 졸기(卒記)에는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안남·유구·섬라의 사신들이 그의 시문을 구해보고 그 시를 자기 나라에 유포시키려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수광이 당대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실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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