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녕(李東寧, 1869년 2월 17일 ~ 1940년 3월 13일)은 대한제국의 계몽운동가·언론인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였다. 1926년부터 1927년까지 제4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제6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으며 한국의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대통령 직무대리·주석·국무위원, 임시 의정원 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종교는 대종교로서, 본관은 연안이고 자는 봉소(鳳所), 호는 석오(石吾)·암산(巖山)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하였다.그러나,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후 반평생을 해외에서 임시정부를 이끌어 조국광복의 일념에 투쟁하던 그는 1940년 3월 13일 사천성 기강에서 과로로 영면하였다. 임시정부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광복후인 1948년 9월 22일 김구의 주선으로 유해를 봉환 사회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하였다.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PropertyValue
dbpedia-owl:abstract
  • 이동녕(李東寧, 1869년 2월 17일 ~ 1940년 3월 13일)은 대한제국의 계몽운동가·언론인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였다. 1926년부터 1927년까지 제4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제6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으며 한국의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대통령 직무대리·주석·국무위원, 임시 의정원 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종교는 대종교로서, 본관은 연안이고 자는 봉소(鳳所), 호는 석오(石吾)·암산(巖山)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하였다.그러나,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후 반평생을 해외에서 임시정부를 이끌어 조국광복의 일념에 투쟁하던 그는 1940년 3월 13일 사천성 기강에서 과로로 영면하였다. 임시정부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광복후인 1948년 9월 22일 김구의 주선으로 유해를 봉환 사회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하였다.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dbpedia-owl:wikiPageExternalLink
dbpedia-owl:wikiPageID
  • 102043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Length
  • 10965 (xsd:integer)
  • 10973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OutDegree
  • 333 (xsd:integer)
  • 334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RevisionID
  • 11699808 (xsd:integer)
  • 14484453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WikiLink
prop-ko:wikiPageUsesTemplate
prop-ko:대수
  • 1 (xsd:integer)
  • 2 (xsd:integer)
  • 5 (xsd:integer)
  • 6 (xsd:integer)
  • 7 (xsd:integer)
  • 11 (xsd:integer)
  • 12 (xsd:integer)
  • 15 (xsd:integer)
  • 16 (xsd:integer)
  • 17 (xsd:integer)
prop-ko:임기
  • 1919 (xsd:integer)
  • 1921 (xsd:integer)
  • 1924 (xsd:integer)
  • 1926 (xsd:integer)
  • 1927 (xsd:integer)
  • 1930 (xsd:integer)
  • 1933 (xsd:integer)
  • 1935 (xsd:integer)
  • 1939 (xsd:integer)
prop-ko:전임자
prop-ko:직책
prop-ko:후임자
dcterms:subject
rdfs:comment
  • 이동녕(李東寧, 1869년 2월 17일 ~ 1940년 3월 13일)은 대한제국의 계몽운동가·언론인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였다. 1926년부터 1927년까지 제4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제6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으며 한국의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대통령 직무대리·주석·국무위원, 임시 의정원 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종교는 대종교로서, 본관은 연안이고 자는 봉소(鳳所), 호는 석오(石吾)·암산(巖山)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하였다.그러나,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후 반평생을 해외에서 임시정부를 이끌어 조국광복의 일념에 투쟁하던 그는 1940년 3월 13일 사천성 기강에서 과로로 영면하였다. 임시정부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광복후인 1948년 9월 22일 김구의 주선으로 유해를 봉환 사회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하였다.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rdfs:label
  • 이동녕
owl:sameAs
http://www.w3.org/ns/prov#wasDerivedFrom
foaf:isPrimaryTopicOf
is dbpedia-owl:predecessor of
is dbpedia-owl:successor of
is dbpedia-owl:wikiPageDisambiguates of
is dbpedia-owl:wikiPageRedirects of
is dbpedia-owl:wikiPageWikiLink of
is prop-ko:부통령 of
is prop-ko:인물 of
is prop-ko:전임자 of
is prop-ko:후임자 of
is foaf:primaryTopic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