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성(李甲成, 일본식 이름: 이와모토 마사이치(岩本正一) , 1889년 10월 23일 ~ 1981년 3월 2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1952년 10월 한국 전쟁 중 전시내각(戰時內閣)의 임시 국무총리(國務總理)를 역임했다.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3년 신간회 사건으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다. 1940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하다가 윤치호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다. 1945년 독립촉성국민회의 조직에 참여하여 회장이 되고 1947년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지냈으며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뒤 1952년 이승만의 친위조직이 된 대한인 국민회 회장을 지냈고, 그해 자유당에 입당,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 정무부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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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갑성(李甲成, 일본식 이름: 이와모토 마사이치(岩本正一) , 1889년 10월 23일 ~ 1981년 3월 2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1952년 10월 한국 전쟁 중 전시내각(戰時內閣)의 임시 국무총리(國務總理)를 역임했다.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3년 신간회 사건으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다. 1940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하다가 윤치호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다. 1945년 독립촉성국민회의 조직에 참여하여 회장이 되고 1947년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지냈으며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뒤 1952년 이승만의 친위조직이 된 대한인 국민회 회장을 지냈고, 그해 자유당에 입당,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 정무부장을 역임하였다. 4.19 혁명 후 야인으로 생활하다 19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위원이 되었다. 1965년 광복회 회장을 지냈다.본관은 경주이고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아호는 연당(硏堂).
  • 이갑성(李甲成, 일본식 이름: 이와모토 마사이치(岩本正一) , 1889년 10월 23일 ~ 1981년 3월 2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1952년 10월 한국 전쟁 중 전시내각(戰時內閣)의 임시 국무총리(國務總理)를 역임했다.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1년 신간회 사건으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다. 1940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하다가 윤치호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다. 1945년 독립촉성국민회의 조직에 참여하여 회장이 되고 1947년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지냈으며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뒤 1952년 이승만의 친위조직이 된 대한인 국민회 회장을 지냈고, 그해 자유당에 입당,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 정무부장을 역임하였다. 4.19 혁명 후 야인으로 생활하다 19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위원이 되었다. 1965년 광복회 회장을 지냈다.본관은 경주이고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아호는 연당(硏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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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갑성(李甲成, 일본식 이름: 이와모토 마사이치(岩本正一) , 1889년 10월 23일 ~ 1981년 3월 2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1952년 10월 한국 전쟁 중 전시내각(戰時內閣)의 임시 국무총리(國務總理)를 역임했다.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3년 신간회 사건으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다. 1940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하다가 윤치호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다. 1945년 독립촉성국민회의 조직에 참여하여 회장이 되고 1947년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지냈으며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뒤 1952년 이승만의 친위조직이 된 대한인 국민회 회장을 지냈고, 그해 자유당에 입당,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 정무부장을 역임하였다.
  • 이갑성(李甲成, 일본식 이름: 이와모토 마사이치(岩本正一) , 1889년 10월 23일 ~ 1981년 3월 2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1952년 10월 한국 전쟁 중 전시내각(戰時內閣)의 임시 국무총리(國務總理)를 역임했다.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1년 신간회 사건으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다. 1940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하다가 윤치호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다. 1945년 독립촉성국민회의 조직에 참여하여 회장이 되고 1947년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지냈으며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뒤 1952년 이승만의 친위조직이 된 대한인 국민회 회장을 지냈고, 그해 자유당에 입당,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 정무부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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