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제(永樂帝, 1360년 5월 2일 ~ 1424년 8월 12일)는 명 왕조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1424년)이다. 대외 정벌과 해외 무역로 확장 등의 정책을 펼쳤고, 주변국을 정벌, 정복하거나 굴복시켜 종주권을 확립하였다. 또한 베트남을 점령하여 한때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키기도 했다. 묘호는 태종(太宗)이었다가, 훗날 가정제 때 성조(成祖)로 고쳤으며, 시호는 계천홍도고명조운성무신공순인지효문황제(啓天弘道高明肇運聖武神功純仁至孝文皇帝)이다. 이름은 주체(朱棣), 명 태조 홍무제의 4남이며 어머니는 효자고황후 마씨이다.처음에는 연왕에 봉(封)해 졌으나, 조카 건문제의 제위계승 및 제후 숙청에 반발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난징을 함락시키고 스스로 즉위하였다. 이후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는 정책을 추진하여 14년만에 도읍을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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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락제(永樂帝, 1360년 5월 2일 ~ 1424년 8월 12일)는 명 왕조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1424년)이다. 대외 정벌과 해외 무역로 확장 등의 정책을 펼쳤고, 주변국을 정벌, 정복하거나 굴복시켜 종주권을 확립하였다. 또한 베트남을 점령하여 한때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키기도 했다. 묘호는 태종(太宗)이었다가, 훗날 가정제 때 성조(成祖)로 고쳤으며, 시호는 계천홍도고명조운성무신공순인지효문황제(啓天弘道高明肇運聖武神功純仁至孝文皇帝)이다. 이름은 주체(朱棣), 명 태조 홍무제의 4남이며 어머니는 효자고황후 마씨이다.처음에는 연왕에 봉(封)해 졌으나, 조카 건문제의 제위계승 및 제후 숙청에 반발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난징을 함락시키고 스스로 즉위하였다. 이후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는 정책을 추진하여 14년만에 도읍을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건문제 주윤문이 그가 일으킨 정변에 의해 축출됐을 때 삼족과 친구, 제자에 이르기까지 847명의 구족이 몰살 당할 것이 뻔한데도 영락제의 찬탈에 항거한 건문제의 스승 방효유는 끝까지 항거했다. 그는 방효유의 친족, 외족, 처족을 비롯한 십족과 문인, 동지, 그의 서적을 탐독하는 인사들을 모두 숙청하고, 그 집안의 여성들은 노비나 첩, 기녀로 보냈다. 이는 '십족을 멸한다', '영락연간의 오이넝쿨 당기기'라는 유행어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영락제는 친히 대군을 이끌고 다섯 번에 걸쳐 몽골 족과 교전하여 헤이룽 강 하류까지 진출했고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패권 확립, 베트남의 정벌, 티베트의 회유와 티무르 제국과의 전쟁 준비, 남아시아로의 함대 파견, 정화 파견과 문물 겨류 등의 팽창정책을 추진했다. 내정에서는 홍무제의 방침을 거의 대부분 계승하면서 황권을 강화하였다. 그의 치세기간 중 명나라는 전성기를 누렸으나 계속된 해외 원정, 정복 전쟁과 대규모 공사로 인한 막대한 물적·인적 소모는 그 뒤 명나라의 황폐화를 불러왔다.
  • 영락제(永樂帝, 1360년 5월 2일 ~ 1424년 8월 12일)는 명 왕조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1424년)이다. 대외 정벌과 해외 무역로 확장 등의 정책을 펼쳤고, 주변국을 정벌, 정복하거나 굴복시켜 종주권을 확립하였다. 또한 베트남을 점령하여 한때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키기도 했다. 묘호는 태종(太宗)이었다가, 훗날 가정제 때 성조(成祖)로 고쳤으며, 시호는 계천홍도고명조운성무신공순인지효문황제(啓天弘道高明肇運聖武神功純仁至孝文皇帝)이다. 이름은 주체(朱棣), 명 태조 홍무제의 4남이며 어머니는 효자고황후 마씨이다.처음에는 연왕에 봉(封)해 졌으나, 조카 건문제의 제위계승 및 제후 숙청에 반발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난징을 함락시키고 스스로 즉위하였다. 이후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는 정책을 추진하여 14년만에 도읍을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건문제 주윤문이 그가 일으킨 정변에 의해 축출됐을 때 삼족과 친구, 제자에 이르기까지 847명의 구족이 몰살 당할 것이 뻔한데도 영락제의 찬탈에 항거한 건문제의 스승 방효유는 끝까지 항거했다. 그는 방효유의 친족, 외족, 처족을 비롯한 십족과 문인, 동지, 그의 서적을 탐독하는 인사들을 모두 숙청하고, 그 집안의 여성들은 노비나 첩, 기녀로 보냈다. 이는 '십족을 멸한다', '영락연간의 오이넝쿨 당기기'라는 유행어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영락제는 친히 대군을 이끌고 다섯 번에 걸쳐 몽골 족과 교전하여 헤이룽 강 하류까지 진출했고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패권 확립, 베트남의 정벌, 티베트의 회유와 티무르 제국과의 전쟁 준비, 남아시아로의 함대 파견, 정화 파견과 문물 교류 등의 팽창정책을 추진했다. 내정에서는 홍무제의 방침을 거의 대부분 계승하면서 황권을 강화하였다. 그의 치세로 명나라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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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락제(永樂帝, 1360년 5월 2일 ~ 1424년 8월 12일)는 명 왕조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1424년)이다. 대외 정벌과 해외 무역로 확장 등의 정책을 펼쳤고, 주변국을 정벌, 정복하거나 굴복시켜 종주권을 확립하였다. 또한 베트남을 점령하여 한때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키기도 했다. 묘호는 태종(太宗)이었다가, 훗날 가정제 때 성조(成祖)로 고쳤으며, 시호는 계천홍도고명조운성무신공순인지효문황제(啓天弘道高明肇運聖武神功純仁至孝文皇帝)이다. 이름은 주체(朱棣), 명 태조 홍무제의 4남이며 어머니는 효자고황후 마씨이다.처음에는 연왕에 봉(封)해 졌으나, 조카 건문제의 제위계승 및 제후 숙청에 반발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난징을 함락시키고 스스로 즉위하였다. 이후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는 정책을 추진하여 14년만에 도읍을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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