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기원전 2세기 ~ 494년)는 삼국시대 한민족의 고대국가로 여겨지는 초기 국가(연맹 왕국)들 중 하나로, 지금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만주 일대(하얼빈, 아청, 위수, 눙안, 창춘, 솽양, 지린, 옌지, 훈춘, 치치하얼, 룽장)를 지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로부터 기원한 국가로 추정된다.기원전 2세기부터 494년까지 600년 이상 존속한 예맥계 부여족(夫餘族)의 부족 국가로서, 일명 북부여라고도 한다. 부여의 영토는 지금의 창춘 시 이퉁강 유역을 중심으로 솽양과 남쪽으로는 랴오닝 성, 북쪽으로는 아무르 강에 이르렀을 것으로 여겨진다.이들은 일찍부터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였고, 은력(殷曆, 은나라 역법)을 사용하였으며, 궁궐 · 성책 · 창고 · 감옥 등 진보된 제도와 조직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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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기원전 2세기 ~ 494년)는 삼국시대 한민족의 고대국가로 여겨지는 초기 국가(연맹 왕국)들 중 하나로, 지금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만주 일대(하얼빈, 아청, 위수, 눙안, 창춘, 솽양, 지린, 옌지, 훈춘, 치치하얼, 룽장)를 지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로부터 기원한 국가로 추정된다.기원전 2세기부터 494년까지 600년 이상 존속한 예맥계 부여족(夫餘族)의 부족 국가로서, 일명 북부여라고도 한다. 부여의 영토는 지금의 창춘 시 이퉁강 유역을 중심으로 솽양과 남쪽으로는 랴오닝 성, 북쪽으로는 아무르 강에 이르렀을 것으로 여겨진다.이들은 일찍부터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였고, 은력(殷曆, 은나라 역법)을 사용하였으며, 궁궐 · 성책 · 창고 · 감옥 등 진보된 제도와 조직을 가졌었다. 신분계급은 왕과 그 밑에 마가(馬加) · 우가(牛加) · 저가(猪加) · 구가(狗加) 등 4가(四加)와 대사(大使) · 사자(使者) 등의 지배층, 그 밑에 하호(下戶)라고 불리던 농노 · 노예로 구성된 피지배 계급의 둘로 나뉘었다. 이른바 4가는 부여 전국을 4등분한 사출도(四出道)를 각기 맡아 다스렸는데, 국도(國都)만은 왕의 직접 지배하에 있었던 것 같다. 즉 4가는 국왕의 통솔을 받지만, 4출도에서 각기 소속의 호족과 하호들을 영솔해 마치 영주(領主)와 영읍(領邑)의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적의 침구가 있을 때는 4가가 친히 출전하고, 하호는 모두 군량을 부담했는데, 특히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가 실시된 듯 집집이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한다. 인접 고구려와 자주 투쟁이 있었으나 원래 그들은 경제적으로 호조건을 구비하였기 때문에 평화를 사랑했다. 기원후 49년 부여는 중국에 사신을 보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혼인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부여는 국력이 강하여 선대부터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한나라 이래로 동쪽의 읍루(숙신)를 신하로서 복속시키고 있었다. 또한, 위(魏)의 고구려 정벌에 부여는 군량을 제공하였고, 부여가 선비족의 침입으로 위태로울 때 진(晋)은 부여를 재흥케 하였다. 그러나 진의 세력이 북방 민족에게 쫓겨져 남쪽으로 천도하면서 부여는 국제적인 고립상태에 빠졌다. 285년(고구려 서천왕 16년) 선비족 모용외(慕容廆)에게 공격을 받아 북옥저로 도망하였다가 후에 다시 본국을 회복하기는 하였으나(이때 북옥저 지역에 일부가 남아 동부여를 형성했다.), 346년 연왕(燕王) 모용황(慕容皝)에게 공격을 받아 쇠약해졌으며, 이후 고구려의 보호를 받다가 494년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 부여(扶餘, 기원전 2세기 ~ 494년)는 한민족의 고대국가로 여겨지는 초기 국가(연맹 왕국)들 중 하나로, 지금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만주 일대(하얼빈, 아청, 위수, 눙안, 창춘, 솽양, 지린, 옌지, 훈춘, 치치하얼, 룽장)를 지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로부터 기원한 국가로 추정된다.부여를 건국한 인물은 고리국에서 나온 동명왕이다.기원전 2세기부터 494년까지 600년 이상 존속한 예맥계 부여족(夫餘族)의 부족 국가로서, 일명 북부여라고도 한다. 부여의 영토는 지금의 창춘 시 이퉁강 유역을 중심으로 솽양과 남쪽으로는 랴오닝 성, 북쪽으로는 아무르 강에 이르렀을 것으로 여겨진다.이들은 일찍부터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였고, 은력(殷曆, 은나라 역법)을 사용하였으며, 궁궐 · 성책 · 창고 · 감옥 등 진보된 제도와 조직을 가졌었다. 신분계급은 왕과 그 밑에 마가(馬加) · 우가(牛加) · 저가(猪加) · 구가(狗加) 등 4가(四加)와 대사(大使) · 사자(使者) 등의 지배층, 그 밑에 하호(下戶)라고 불리던 농노 · 노예로 구성된 피지배 계급의 둘로 나뉘었다. 이른바 4가는 부여 전국을 4등분한 사출도(四出道)를 각기 맡아 다스렸는데, 국도(國都)만은 왕의 직접 지배하에 있었던 것 같다. 즉 4가는 국왕의 통솔을 받지만, 4출도에서 각기 소속의 호족과 하호들을 영솔해 마치 영주(領主)와 영읍(領邑)의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적의 침구가 있을 때는 4가가 친히 출전하고, 하호는 모두 군량을 부담했는데, 특히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가 실시된 듯 집집이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한다. 인접 고구려와 자주 투쟁이 있었으나 원래 그들은 경제적으로 호조건을 구비하였기 때문에 평화를 사랑했다. 기원후 49년 부여는 중국에 사신을 보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혼인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부여는 국력이 강하여 선대부터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한나라 이래로 동쪽의 읍루(숙신)를 신하로서 복속시키고 있었다. 또한, 위(魏)의 고구려 정벌에 부여는 군량을 제공하였고, 부여가 선비족의 침입으로 위태로울 때 진(晋)은 부여를 재흥케 하였다. 그러나 진의 세력이 북방 민족에게 쫓겨져 남쪽으로 천도하면서 부여는 국제적인 고립상태에 빠졌다. 285년(고구려 서천왕 16년) 선비족 모용외(慕容廆)에게 공격을 받아 북옥저로 도망하였다가 후에 다시 본국을 회복하기는 하였으나(이때 북옥저 지역에 일부가 남아 동부여를 형성했다.), 346년 연왕(燕王) 모용황(慕容皝)에게 공격을 받아 쇠약해졌으며, 이후 고구려의 보호를 받다가 494년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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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기원전 2세기 ~ 494년)는 삼국시대 한민족의 고대국가로 여겨지는 초기 국가(연맹 왕국)들 중 하나로, 지금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만주 일대(하얼빈, 아청, 위수, 눙안, 창춘, 솽양, 지린, 옌지, 훈춘, 치치하얼, 룽장)를 지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로부터 기원한 국가로 추정된다.기원전 2세기부터 494년까지 600년 이상 존속한 예맥계 부여족(夫餘族)의 부족 국가로서, 일명 북부여라고도 한다. 부여의 영토는 지금의 창춘 시 이퉁강 유역을 중심으로 솽양과 남쪽으로는 랴오닝 성, 북쪽으로는 아무르 강에 이르렀을 것으로 여겨진다.이들은 일찍부터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였고, 은력(殷曆, 은나라 역법)을 사용하였으며, 궁궐 · 성책 · 창고 · 감옥 등 진보된 제도와 조직을 가졌었다.
  • 부여(扶餘, 기원전 2세기 ~ 494년)는 한민족의 고대국가로 여겨지는 초기 국가(연맹 왕국)들 중 하나로, 지금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만주 일대(하얼빈, 아청, 위수, 눙안, 창춘, 솽양, 지린, 옌지, 훈춘, 치치하얼, 룽장)를 지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로부터 기원한 국가로 추정된다.부여를 건국한 인물은 고리국에서 나온 동명왕이다.기원전 2세기부터 494년까지 600년 이상 존속한 예맥계 부여족(夫餘族)의 부족 국가로서, 일명 북부여라고도 한다. 부여의 영토는 지금의 창춘 시 이퉁강 유역을 중심으로 솽양과 남쪽으로는 랴오닝 성, 북쪽으로는 아무르 강에 이르렀을 것으로 여겨진다.이들은 일찍부터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였고, 은력(殷曆, 은나라 역법)을 사용하였으며, 궁궐 · 성책 · 창고 · 감옥 등 진보된 제도와 조직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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