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제관지(碧蹄館址)는 사적 제144호이다. 옛날 역관(驛館)이 있던 자리로 현재 고양시 고양동 사무소 북쪽에 인접해 있다.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에게는 역관에 머물러 휴식하는 공용의 숙박시설이기도 했다. 벽제관은 한성에 인접하고 있었으므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은 한성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이 역관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관복으로 갈아 입고 예의를 갖추어 들어 가는 것이 정해진 예법이었다.본래 고양시의 고읍치(古邑治)는 벽제관에서 서북방으로 5리 정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위치로 읍치를 옮긴 인조 3년(1625)에 이곳에 새로 세운 객관이 지금의 벽제관이다. 당시 규모는 면적 1,265평, 건물은 601평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언제 다시 건물을 세웠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일제 때 일부가 헐렸고 6·25 때 완전히 불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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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제관지(碧蹄館址)는 사적 제144호이다. 옛날 역관(驛館)이 있던 자리로 현재 고양시 고양동 사무소 북쪽에 인접해 있다.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에게는 역관에 머물러 휴식하는 공용의 숙박시설이기도 했다. 벽제관은 한성에 인접하고 있었으므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은 한성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이 역관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관복으로 갈아 입고 예의를 갖추어 들어 가는 것이 정해진 예법이었다.본래 고양시의 고읍치(古邑治)는 벽제관에서 서북방으로 5리 정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위치로 읍치를 옮긴 인조 3년(1625)에 이곳에 새로 세운 객관이 지금의 벽제관이다. 당시 규모는 면적 1,265평, 건물은 601평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언제 다시 건물을 세웠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일제 때 일부가 헐렸고 6·25 때 완전히 불타 버렸다. 그러나 1960년경까지도 객관문(客館門)은 남아 있었으나 퇴락(頹落)해 무너져버려 현재에는 객사의 윤곽과 터, 그리고 7척(尺) 간격으로 원좌주초석의 장대석(長臺石)이 남아 있을 뿐이다.
  • 벽제관지(碧蹄館址)는 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의 공용숙박시설이 있던 곳이다. 사적 제144호이며 현재 고양시 고양동 사무소 북쪽에 있다.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에게는 역관에 머물러 휴식하는 공용의 숙박 시설이기도 했다. 벽제관은 한성에 인접하고 있었으므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은 한성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이 역관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관복으로 갈아 입고 예의를 갖추어 들어 가는 것이 정해진 예법이었다.본래 고양시의 고읍치(古邑治)는 벽제관에서 서북방으로 5리 정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위치로 읍치를 옮긴 인조 3년(1625)에 이곳에 새로 세운 객관이 지금의 벽제관이다. 당시 규모는 면적 1,265평, 건물은 601평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언제 다시 건물을 세웠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일제 때 일부가 헐렸고 6·25 때 완전히 불타 버렸다. 그러나 1960년경까지도 객관문(客館門)은 남아 있었으나 퇴락(頹落)해 무너져버려 현재에는 객사의 윤곽과 터, 그리고 7척(尺) 간격으로 원좌주초석의 장대석(長臺石)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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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제관지(碧蹄館址)는 사적 제144호이다. 옛날 역관(驛館)이 있던 자리로 현재 고양시 고양동 사무소 북쪽에 인접해 있다.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에게는 역관에 머물러 휴식하는 공용의 숙박시설이기도 했다. 벽제관은 한성에 인접하고 있었으므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은 한성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이 역관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관복으로 갈아 입고 예의를 갖추어 들어 가는 것이 정해진 예법이었다.본래 고양시의 고읍치(古邑治)는 벽제관에서 서북방으로 5리 정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위치로 읍치를 옮긴 인조 3년(1625)에 이곳에 새로 세운 객관이 지금의 벽제관이다. 당시 규모는 면적 1,265평, 건물은 601평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언제 다시 건물을 세웠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일제 때 일부가 헐렸고 6·25 때 완전히 불타 버렸다.
  • 벽제관지(碧蹄館址)는 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의 공용숙박시설이 있던 곳이다. 사적 제144호이며 현재 고양시 고양동 사무소 북쪽에 있다.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에게는 역관에 머물러 휴식하는 공용의 숙박 시설이기도 했다. 벽제관은 한성에 인접하고 있었으므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은 한성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이 역관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관복으로 갈아 입고 예의를 갖추어 들어 가는 것이 정해진 예법이었다.본래 고양시의 고읍치(古邑治)는 벽제관에서 서북방으로 5리 정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위치로 읍치를 옮긴 인조 3년(1625)에 이곳에 새로 세운 객관이 지금의 벽제관이다. 당시 규모는 면적 1,265평, 건물은 601평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언제 다시 건물을 세웠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일제 때 일부가 헐렸고 6·25 때 완전히 불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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