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채(朴宗采, 1780년 ~ 1835년 11월 13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字)는 사행(士行)이고, 호는 혜전(蕙田)이다. 박지원의 아들이며 박규수의 아버지이다.벼슬은 음직(蔭職)으로 출사하여 경산현령을 지냈다. 1795년 가을에 전주 유씨와 결혼하였다. 1859년(철종 10년) 증광과 진사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다.저서로 《과정록》(過庭錄)이 있으며,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희병 옮김, 돌베게, 1998년, ISBN 8971991070)로 번역 출판되었다. 생전 관직은 현감에 이르렀으나,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가 여러번 추증,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가 다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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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채(朴宗采, 1780년 ~ 1835년 11월 13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字)는 사행(士行)이고, 호는 혜전(蕙田)이다. 박지원의 아들이며 박규수의 아버지이다.벼슬은 음직(蔭職)으로 출사하여 경산현령을 지냈다. 1795년 가을에 전주 유씨와 결혼하였다. 1859년(철종 10년) 증광과 진사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다.저서로 《과정록》(過庭錄)이 있으며,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희병 옮김, 돌베게, 1998년, ISBN 8971991070)로 번역 출판되었다. 생전 관직은 현감에 이르렀으나,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가 여러번 추증,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가 다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 박종채(朴宗采, 1780년 ~ 1835년 11월 13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연암집, 열하일기 등을 지은 대실학자 박지원의 아들이며 환계 박규수의 아버지다. 자(字)는 사행(士行)이고, 호는 혜전(蕙田)으로 본관은 반남이다. 1810년(순조 10년) 증광과 진사시에 합격해 진사가 됐다. 대과에는 합격하지 못했으나 음직(蔭職)으로 경산현령에 제수됐다. 1795년 가을 전주 유씨와 결혼하고 한참 후 어렵게 박규수를 낳았다.저서로 아버지 박지원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그린 《과정록》(過庭錄)이 있으며, 후손에 의해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희병 옮김, 도서출판 돌베게, 1998년, ISBN 8971991070)이란 제목으로 정식 출판됐다. 생전 관직은 현감에 그쳤으나, 사후 그의 장남 박규수가 여러 번의 난을 거듭 평정한 공으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가 이조판서, 다시 영의정으로 추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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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채(朴宗采, 1780년 ~ 1835년 11월 13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字)는 사행(士行)이고, 호는 혜전(蕙田)이다. 박지원의 아들이며 박규수의 아버지이다.벼슬은 음직(蔭職)으로 출사하여 경산현령을 지냈다. 1795년 가을에 전주 유씨와 결혼하였다. 1859년(철종 10년) 증광과 진사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다.저서로 《과정록》(過庭錄)이 있으며,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희병 옮김, 돌베게, 1998년, ISBN 8971991070)로 번역 출판되었다. 생전 관직은 현감에 이르렀으나,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가 여러번 추증,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가 다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 박종채(朴宗采, 1780년 ~ 1835년 11월 13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연암집, 열하일기 등을 지은 대실학자 박지원의 아들이며 환계 박규수의 아버지다. 자(字)는 사행(士行)이고, 호는 혜전(蕙田)으로 본관은 반남이다. 1810년(순조 10년) 증광과 진사시에 합격해 진사가 됐다. 대과에는 합격하지 못했으나 음직(蔭職)으로 경산현령에 제수됐다. 1795년 가을 전주 유씨와 결혼하고 한참 후 어렵게 박규수를 낳았다.저서로 아버지 박지원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그린 《과정록》(過庭錄)이 있으며, 후손에 의해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희병 옮김, 도서출판 돌베게, 1998년, ISBN 8971991070)이란 제목으로 정식 출판됐다. 생전 관직은 현감에 그쳤으나, 사후 그의 장남 박규수가 여러 번의 난을 거듭 평정한 공으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가 이조판서, 다시 영의정으로 추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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