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유(閔宗儒, 1245 ~ 1324)는 고려시대의 문신이다. 민영모의 현손이자 민적의 아버지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시호는 충순(忠順)이다. 11세때 왕자 시양부의 학우가 되었고, 19세때 청도감무에 임명되었다. 이 당시에 공정한 법 집행으로 명성이 높았다.충렬왕 때 삼사우윤, 밀직부사, 형조판서, 전법판사 등을 거쳐 찬성사에 이르렀다. 충숙왕 때 복흥군에 봉해졌으나 1321년 봉작을 내놓고 찬성사로 복직했다. 당대의 간신 권한공이 원나라 중서성에 심왕의 추대를 건의하려고 서명을 강요하자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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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종유(閔宗儒, 1245 ~ 1324)는 고려시대의 문신이다. 민영모의 현손이자 민적의 아버지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시호는 충순(忠順)이다. 11세때 왕자 시양부의 학우가 되었고, 19세때 청도감무에 임명되었다. 이 당시에 공정한 법 집행으로 명성이 높았다.충렬왕 때 삼사우윤, 밀직부사, 형조판서, 전법판사 등을 거쳐 찬성사에 이르렀다. 충숙왕 때 복흥군에 봉해졌으나 1321년 봉작을 내놓고 찬성사로 복직했다. 당대의 간신 권한공이 원나라 중서성에 심왕의 추대를 건의하려고 서명을 강요하자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 민종유(閔宗儒, 1245 ~ 1324)는 고려시대의 문신이다. 민영모의 현손이자 민적의 아버지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시호는 충순(忠順)이다.11세때 왕자 시양부의 학우가 되었고, 19세때 청도감무에 임명되었다. 이 당시에 공정한 법 집행으로 명성이 높았다.충렬왕 때 삼사우윤, 밀직부사, 형조판서, 전법판사 등을 거쳐 찬성사에 이르렀다.충숙왕 때 복흥군에 봉해졌으나 1321년 봉작을 내놓고 찬성사로 복직했다. 당대의 간신 권한공이 원나라 중서성에 심왕의 추대를 건의하려고 서명을 강요하자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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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종유(閔宗儒, 1245 ~ 1324)는 고려시대의 문신이다. 민영모의 현손이자 민적의 아버지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시호는 충순(忠順)이다. 11세때 왕자 시양부의 학우가 되었고, 19세때 청도감무에 임명되었다. 이 당시에 공정한 법 집행으로 명성이 높았다.충렬왕 때 삼사우윤, 밀직부사, 형조판서, 전법판사 등을 거쳐 찬성사에 이르렀다. 충숙왕 때 복흥군에 봉해졌으나 1321년 봉작을 내놓고 찬성사로 복직했다. 당대의 간신 권한공이 원나라 중서성에 심왕의 추대를 건의하려고 서명을 강요하자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 민종유(閔宗儒, 1245 ~ 1324)는 고려시대의 문신이다. 민영모의 현손이자 민적의 아버지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시호는 충순(忠順)이다.11세때 왕자 시양부의 학우가 되었고, 19세때 청도감무에 임명되었다. 이 당시에 공정한 법 집행으로 명성이 높았다.충렬왕 때 삼사우윤, 밀직부사, 형조판서, 전법판사 등을 거쳐 찬성사에 이르렀다.충숙왕 때 복흥군에 봉해졌으나 1321년 봉작을 내놓고 찬성사로 복직했다. 당대의 간신 권한공이 원나라 중서성에 심왕의 추대를 건의하려고 서명을 강요하자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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