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식(閔元植, 1886년 7월 12일 ~ 1921년 2월 17일)은 대한제국의 관료, 사회 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관료, 언론인, 사상가이다. 일제 강점기 초기에 조선인의 참정권, 자치권을 주장하였다. 그는 1907년 당시 일본 궁내성에 시찰 갔다가 일본인에 의해 유인, 인종박람회에 끌려간 조선인 남녀를 보고 안타깝게 여겨,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왔다. 호는 정암(正菴), 난곡(蘭谷), 한동(韓東), 양하(養何)이고, 본관은 여흥(麗興)이다.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05년(광무 8년) 경무청 총순을 지내기도 했다. 1906년 귀국,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후견으로 내무부 위생과장, 통정대부 등을 역임했다. 1907년(광무 10년) 내무부 위생과장으로 있을 때 《위생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뒤 내무부 위생국장 겸 광제원장을 거쳐 황실 회계심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PropertyValue
dbpedia-owl:abstract
  • 민원식(閔元植, 1886년 7월 12일 ~ 1921년 2월 17일)은 대한제국의 관료, 사회 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관료, 언론인, 사상가이다. 일제 강점기 초기에 조선인의 참정권, 자치권을 주장하였다. 그는 1907년 당시 일본 궁내성에 시찰 갔다가 일본인에 의해 유인, 인종박람회에 끌려간 조선인 남녀를 보고 안타깝게 여겨,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왔다. 호는 정암(正菴), 난곡(蘭谷), 한동(韓東), 양하(養何)이고, 본관은 여흥(麗興)이다.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05년(광무 8년) 경무청 총순을 지내기도 했다. 1906년 귀국,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후견으로 내무부 위생과장, 통정대부 등을 역임했다. 1907년(광무 10년) 내무부 위생과장으로 있을 때 《위생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뒤 내무부 위생국장 겸 광제원장을 거쳐 황실 회계심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1908년(융희 2년) 친일 인사 이지용 등과 함께 대한실업협회를 조직했고, 1910년 1월 1일에는 《시사신문 (時事新聞)》을 발행하여 사장에 취임하였다. 한일 합방 이후에는 중추원 부찬의를 역임했다. 한일 합방 조약 직후부터 그는 이규완 등과 함께 조선인의 참정권을 허용해줄 것을 여러번 조선총독부와 일본 제국 정부에 건의하였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1919년에는 3.1 만세 운동을 비판하고, 민족자결주의를 오해한 것이라 주장하였다.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문화 정치로 정책을 바꿔 민간신문의 발행이 허용되자 신일본주의를 표방하며 조선인 참정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그해 국민협회(國民協會)를 조직하였고, 같은 해 4월 1일에는 《시사신문》을 복간하였다. 1921년 2월 16일 일본 도쿄(東京) 데이고쿠 호텔(帝國 Hotel)에서 목수로 위장하고 찾아온 민족주의자 양근환(梁槿煥)의 칼에 복부, 이마를 찔려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3.1 운동 이후에 나타난 민원식 등의 참정권운동은 그의 피살로 일단락되었다. 엄준원의 사위이며 고종의 계비 순헌황귀비의 조카 사위이고, 엄주명의 매형이었다.
  • 민원식(閔元植, 1886년 7월 12일 ~ 1921년 2월 17일)은 대한제국의 관료, 사회 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관료, 언론인, 사상가이다. 일본식 이름은 閔元 植이다. 일제 강점기 초기에 조선인의 참정권, 자치권을 주장하였다. 그는 1907년 당시 일본 궁내성에 시찰 갔다가 일본인에 의해 유인, 인종박람회에 끌려간 조선인 남녀를 보고 안타깝게 여겨,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왔다. 호는 정암(正菴), 난곡(蘭谷), 한동(韓東), 양하(養何)이고, 본관은 여흥(麗興)이다.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05년(광무 8년) 경무청 총순을 지내기도 했다. 1906년 귀국,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후견으로 내무부 위생과장, 통정대부 등을 역임했다. 1907년(광무 10년) 내무부 위생과장으로 있을 때 《위생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뒤 내무부 위생국장 겸 광제원장을 거쳐 황실 회계심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1908년(융희 2년) 친일 인사 이지용 등과 함께 대한실업협회를 조직했고, 1910년 1월 1일에는 《시사신문 (時事新聞)》을 발행하여 사장에 취임하였다. 한일 합방 이후에는 중추원 부찬의를 역임했다. 한일 합방 조약 직후부터 그는 이규완 등과 함께 조선인의 참정권을 허용해줄 것을 여러번 조선총독부와 일본 제국 정부에 건의하였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1919년에는 3.1 만세 운동을 비판하고, 민족자결주의를 오해한 것이라 주장하였다.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문화 정치로 정책을 바꿔 민간신문의 발행이 허용되자 신일본주의를 표방하며 조선인 참정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그해 국민협회(國民協會)를 조직하였고, 같은 해 4월 1일에는 《시사신문》을 복간하였다. 1921년 2월 16일 일본 도쿄(東京) 데이고쿠 호텔(帝國 Hotel)에서 목수로 위장하고 찾아온 민족주의자 양근환(梁槿煥)의 칼에 복부, 이마를 찔려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3.1 운동 이후에 나타난 민원식 등의 참정권운동은 그의 피살로 일단락되었다. 엄준원의 사위이며 고종의 계비 순헌황귀비의 조카 사위이고, 엄주명의 매형이었다.
dbpedia-owl:birthPlace
dbpedia-owl:deathCause
dbpedia-owl:deathPlace
dbpedia-owl:relative
dbpedia-owl:religion
dbpedia-owl:spouse
dbpedia-owl:wikiPageExternalLink
dbpedia-owl:wikiPageID
  • 120433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Length
  • 42558 (xsd:integer)
  • 42710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OutDegree
  • 1041 (xsd:integer)
  • 1042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RevisionID
  • 11997002 (xsd:integer)
  • 14426056 (xsd:integer)
dbpedia-owl:wikiPageWikiLink
prop-ko:id
  • ISBN 978-89-7199-012-4
  • 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prop-ko:wikiPageUsesTemplate
prop-ko:거주지
  • →→
prop-ko:국적
  • →→
  • →→
prop-ko:그림
  • 閔元植.png
prop-ko:그림제목
  • 민원식
prop-ko:꺾쇠표
prop-ko:날짜
  • 1993-03-01 (xsd:date)
prop-ko:발행년도
  • 2007 (xsd:integer)
prop-ko:발행월
  • 12 (xsd:integer)
prop-ko:발행일자
  • 1993-03-01 (xsd:date)
prop-ko:배우자
prop-ko:별칭
  • 호는 정암, 난곡, 한동, 양하
prop-ko:부모
  • 친 아버지 민영준, 양 아버지 민영우
prop-ko:사망원인
  • 암살
prop-ko:사망일
  • 1921 (xsd:integer)
prop-ko:사망지
  • 도쿄 시 도쿄제국대학 병원
prop-ko:설명
  • 민원식, 1920년 1월
prop-ko:소속
  • 양지군, 이천군, 고양군 군수
prop-ko:연도
  • 2007 (xsd:integer)
prop-ko:이름
  • 민원식
  • 閔元植
prop-ko:자녀
  • 딸 민춘자
prop-ko:
  • 민원식
  • 민원식: 참정권 청원운동의 주동자
prop-ko:장url
prop-ko:저자
  • 반민족문제연구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prop-ko:제목
  • 2007 (xsd:integer)
  • 친일파 99인 2
prop-ko:종교
prop-ko:직업
  • 관료, 정치인, 언론인, 사상가, 사회운동가
prop-ko:
  • 1782 (xsd:integer)
prop-ko:출생일
  • 1886 (xsd:integer)
prop-ko:출생지
  • 경기도 양평군 양평면
prop-ko:출판사
  • 돌베개
prop-ko:출판위치
  • 서울
prop-ko:친척
  • 형 민윤식, 장인 엄준원, 처남 엄주명, 처조부 엄진삼, 처고모 순헌황귀비, 처고모부 고종, 처사촌 영친왕
dcterms:subject
rdf:type
rdfs:comment
  • 민원식(閔元植, 1886년 7월 12일 ~ 1921년 2월 17일)은 대한제국의 관료, 사회 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관료, 언론인, 사상가이다. 일제 강점기 초기에 조선인의 참정권, 자치권을 주장하였다. 그는 1907년 당시 일본 궁내성에 시찰 갔다가 일본인에 의해 유인, 인종박람회에 끌려간 조선인 남녀를 보고 안타깝게 여겨,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왔다. 호는 정암(正菴), 난곡(蘭谷), 한동(韓東), 양하(養何)이고, 본관은 여흥(麗興)이다.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05년(광무 8년) 경무청 총순을 지내기도 했다. 1906년 귀국,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후견으로 내무부 위생과장, 통정대부 등을 역임했다. 1907년(광무 10년) 내무부 위생과장으로 있을 때 《위생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뒤 내무부 위생국장 겸 광제원장을 거쳐 황실 회계심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 민원식(閔元植, 1886년 7월 12일 ~ 1921년 2월 17일)은 대한제국의 관료, 사회 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관료, 언론인, 사상가이다. 일본식 이름은 閔元 植이다. 일제 강점기 초기에 조선인의 참정권, 자치권을 주장하였다. 그는 1907년 당시 일본 궁내성에 시찰 갔다가 일본인에 의해 유인, 인종박람회에 끌려간 조선인 남녀를 보고 안타깝게 여겨,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왔다. 호는 정암(正菴), 난곡(蘭谷), 한동(韓東), 양하(養何)이고, 본관은 여흥(麗興)이다.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05년(광무 8년) 경무청 총순을 지내기도 했다. 1906년 귀국,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후견으로 내무부 위생과장, 통정대부 등을 역임했다. 1907년(광무 10년) 내무부 위생과장으로 있을 때 《위생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뒤 내무부 위생국장 겸 광제원장을 거쳐 황실 회계심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rdfs:label
  • 민원식
owl:sameAs
http://www.w3.org/ns/prov#wasDerivedFrom
foaf:isPrimaryTopicOf
foaf:name
  • 민원식
  • 閔元植
foaf:nick
  • 호는 정암(正菴), 난곡(蘭谷), 한동(韓東), 양하(養何)
is dbpedia-owl:relative of
is dbpedia-owl:wikiPageDisambiguates of
is dbpedia-owl:wikiPageRedirects of
is dbpedia-owl:wikiPageWikiLink of
is prop-ko:인물 of
is foaf:primaryTopic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