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공방전(러시아어: Битва за Москву, 영어: Battle of Moscow, 라틴어: Bitva za Moskvu)는 1941-1942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근방에서 독일군과 소련군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투를 발한다. 이 전투는 독일군의 공격에 대한 소련의 모스크바 방위와 이후 반격으로 이루어진다. 히틀러는 소련의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모스크바를 함락하는 것은 군사적,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암호명 보탄 작전(Unternehmen Wotan)이라는 별도의 모스크바 공략작전이 계획되어 있었다.원래의 바르바로사 작전에서는 모스크바 탈취를 소련 침공 후 3-4달 이내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의 파죽지세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진격은 소련군의 저항 때문에 늦쳐줬다. 게다가 히틀러는 자원과 식량이 모여 있는 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 공략을 모스크바보다 우선순위에 둘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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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 공방전(러시아어: Битва за Москву, 영어: Battle of Moscow, 라틴어: Bitva za Moskvu)는 1941-1942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근방에서 독일군과 소련군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투를 발한다. 이 전투는 독일군의 공격에 대한 소련의 모스크바 방위와 이후 반격으로 이루어진다. 히틀러는 소련의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모스크바를 함락하는 것은 군사적,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암호명 보탄 작전(Unternehmen Wotan)이라는 별도의 모스크바 공략작전이 계획되어 있었다.원래의 바르바로사 작전에서는 모스크바 탈취를 소련 침공 후 3-4달 이내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의 파죽지세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진격은 소련군의 저항 때문에 늦쳐줬다. 게다가 히틀러는 자원과 식량이 모여 있는 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 공략을 모스크바보다 우선순위에 둘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래서 중앙집단군이 전격전의 핵심전력인 예하의 구데리안 기갑군을 키예프 공략을 위해 남부집단군으로 전속시켜 전력이 약화되었다. 그리하여 중앙집단군이 맡은 스몰렌스크 공략작전은 7월부터 9월까지 지속되어 2달간 모스크바 공략작전이 늦어졌다. 키예프와 스몰렌스크를 함락시킨 이후 남방전선으로 전속되었던 기갑부대의 재정비때문에 독일군의 공세는 일단 레닌그라드와 키예프에 이르는 전선에서 정지하였고, 모스크바 진격은 9월 30일이 되어야 재개되었다. 이 작전은 태풍 작전(Unternehmen Teifun)으로 명명되었다. 이 작전의 목표는 겨울까지 모스크바를 함락시키는 것이었다.작전이 재개된 직후, 소련군의 수 개 야전군을 포위섬멸한 독일군은 모스크바 서쪽 120km 근방의 모자이스크 방위선에서 일단 정지되었다. 도로와 들판을 진흙창으로 만든 라스푸티챠 때문에 추축군의 차량과 인마는 전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을 장마가 끝난후 찾아온 추위는 땅을 얼어붙게 만들어 독일군은 전진을 재개할 수 있었지만, 독일군은 이제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추위와 강화된 소련군의 저항과 다시 한번 맞닥뜨려 험난한 길을 나서게 되었다.12월 초, 독일군의 첨병부대는 모스크바의 심장부이자 소련의 정부청사인 크레믈린에서 30km 서쪽까지 진출하여 쌍안경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추위와 약화된 전력때문에 더이상 전진을 할 수가 없었다. 12월 5일, 소련군은 시베리아에 주둔했던 전력완비의 사단들을 모스크바 전선에 투입하여 독일군을 공격했다. 1942년 1월까지 소련군은 독일군을 100km까지 후퇴시켜 모스크바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였다. 모스크바 공방전은 독소전쟁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이는 소련이 처음으로 독일의 공세를 좌절시켜 수도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전투는 쌍방의 인명손실이 100만명을 넘는 참혹한 결과를 내어, 제2차 세계 대전의 최대 규모의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모스크바 공방전은 독일군이 1939년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로 패퇴한 전투로 독일군 역사상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독일군은 1941년 9월의 옐르냐 공세와 로스토프 공방전에서 패퇴하게 되지만(이 패퇴때문에 남방집단군 총사령관 룬트슈테트는 해임되었다), 이 전투들은 모스크바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다.
  • 모스크바 공방전(러시아어: Битва за Москву, 영어: Battle of Moscow, 라틴어: Bitva za Moskvu)는 1941-1942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근방에서 독일군과 소련군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투를 발한다. 이 전투는 독일군의 공격에 대한 소련의 모스크바 방위와 이후 반격으로 이루어진다. 히틀러는 소련의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모스크바를 함락하는 것은 군사적,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암호명 보탄 작전(Unternehmen Wotan)이라는 별도의 모스크바 공략작전이 계획되어 있었다.원래의 바르바로사 작전에서는 모스크바 탈취를 소련 침공 후 3-4달 이내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의 파죽지세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진격은 소련군의 저항 때문에 늦쳐줬다. 게다가 히틀러는 자원과 식량이 모여 있는 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 공략을 모스크바보다 우선순위에 둘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래서 중앙집단군이 전격전의 핵심전력인 예하의 구데리안 기갑군을 키예프 공략을 위해 남부집단군으로 전속시켜 전력이 약화되었다. 그리하여 중앙집단군이 맡은 스몰렌스크 공략작전은 7월부터 9월까지 지속되어 2달간 모스크바 공략작전이 늦어졌다. 키예프와 스몰렌스크를 함락시킨 이후 남방전선으로 전속되었던 기갑부대의 재정비때문에 독일군의 공세는 일단 레닌그라드와 키예프에 이르는 전선에서 정지하였고, 모스크바 진격은 9월 30일이 되어야 재개되었다. 이 작전은 태풍 작전(Unternehmen Teifun)으로 명명되었다. 이 작전의 목표는 겨울까지 모스크바를 함락시키는 것이었다.작전이 재개된 직후, 소련군의 수 개 야전군을 포위섬멸한 독일군은 모스크바 서쪽 120 km 근방의 모자이스크 방위선에서 일단 정지되었다. 도로와 들판을 진흙창으로 만든 라스푸티챠 때문에 추축군의 차량과 인마는 전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을 장마가 끝난후 찾아온 추위는 땅을 얼어붙게 만들어 독일군은 전진을 재개할 수 있었지만, 독일군은 이제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추위와 강화된 소련군의 저항과 다시 한번 맞닥뜨려 험난한 길을 나서게 되었다.12월 초, 독일군의 첨병부대는 모스크바의 심장부이자 소련의 정부청사인 크레믈린에서 30 km 서쪽까지 진출하여 쌍안경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추위와 약화된 전력때문에 더이상 전진을 할 수가 없었다. 12월 5일, 소련군은 시베리아에 주둔했던 전력완비의 사단들을 모스크바 전선에 투입하여 독일군을 공격했다. 1942년 1월까지 소련군은 독일군을 100km까지 후퇴시켜 모스크바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였다. 모스크바 공방전은 독소전쟁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이는 소련이 처음으로 독일의 공세를 좌절시켜 수도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전투는 쌍방의 인명손실이 100만명을 넘는 참혹한 결과를 내어, 제2차 세계 대전의 최대 규모의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모스크바 공방전은 독일군이 1939년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로 패퇴한 전투로 독일군 역사상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독일군은 1941년 9월의 옐르냐 공세와 로스토프 공방전에서 패퇴하게 되지만(이 패퇴때문에 남방집단군 총사령관 룬트슈테트는 해임되었다), 이 전투들은 모스크바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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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련의 전략적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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