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는 헤이안 중기의 간토(關東)의 호족이다.간무(桓武) 천황으로부터 최초로 다이라(平)라는 성씨를 사성받은 가즈사와라(葛原) 친왕의 손자 다카모치왕(高望王)의 셋째 아들인 다이라노 요시마사(平良將)의 적자로서, 간무 천황의 5세 손이다. 시모우사(下總), 히타치(常陸)에 걸쳐 세거하고 있던 다이라 일족간의 항쟁을 끝내는 간토 전역을 휩쓴 대전쟁으로까지 확산시켰으며, 고쿠가(國衙, 관아)를 습격해 고쿠시의 인끈을 빼앗고 마침내 교토의 조정에 맞서는 독자적인 천황으로서 즉위하여 '신황(新皇)'이라 자칭, '조적(朝敵)'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황으로 즉위하고 불과 두 달 만에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鄕)ㆍ다이라노 사다모리(平貞盛) 등에게 토벌당했다(죠헤이承平ㆍ덴교天慶의 난) 사후 간다 진쟈를 비롯한 여러 진쟈에 모셔졌으며, 신으로 모셔지게 된 뒤에는 간다묘진(神田明神)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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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는 헤이안 중기의 간토(關東)의 호족이다.간무(桓武) 천황으로부터 최초로 다이라(平)라는 성씨를 사성받은 가즈사와라(葛原) 친왕의 손자 다카모치왕(高望王)의 셋째 아들인 다이라노 요시마사(平良將)의 적자로서, 간무 천황의 5세 손이다. 시모우사(下總), 히타치(常陸)에 걸쳐 세거하고 있던 다이라 일족간의 항쟁을 끝내는 간토 전역을 휩쓴 대전쟁으로까지 확산시켰으며, 고쿠가(國衙, 관아)를 습격해 고쿠시의 인끈을 빼앗고 마침내 교토의 조정에 맞서는 독자적인 천황으로서 즉위하여 '신황(新皇)'이라 자칭, '조적(朝敵)'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황으로 즉위하고 불과 두 달 만에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鄕)ㆍ다이라노 사다모리(平貞盛) 등에게 토벌당했다(죠헤이承平ㆍ덴교天慶의 난) 사후 간다 진쟈를 비롯한 여러 진쟈에 모셔졌으며, 신으로 모셔지게 된 뒤에는 간다묘진(神田明神)이라 불렸다. '무사(武士)'라는 존재의 발흥은 다름아닌 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전투에서는 영지에서 방목한 풍부한 말을 이용한 기마전법을 구사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휘어진 형태의 일본도를 최초로 만들게 했다고도 전한다.
  •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는 헤이안 중기의 간토(關東)의 호족이다.간무 천황(桓武天皇)으로부터 최초로 다이라(平) 성을 하사받은 가즈사와라 친왕(葛原親王)의 손자 다카모치 왕(高望王)의 셋째 아들인 다이라노 요시마사(平良將)의 적자로써, 간무 천황의 5세 손이다. 시모우사(下總), 히타치(常陸)에서 대대로 살아온 다이라 일족의 항쟁을 끝내는 간토 전역을 휩쓴 대전쟁으로까지 확산시켰으며, 고쿠가(國衙, 관아)를 습격해 지방관의 인끈을 빼앗고 마침내 교토의 조정에 맞서는 독자적인 천황으로 즉위, '신황(新皇)'이라 자칭함으로써 '조적(朝敵)'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즉위 두 달 만에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鄕)ㆍ다이라노 사다모리(平貞盛) 등에게 토벌당했다(죠헤이承平ㆍ덴교天慶의 난) 사후 간다 진쟈를 비롯한 여러 진쟈에 모셔졌으며, 신으로 모셔지게 된 뒤에는 간다 묘진(神田明神)이라 불렸다. '무사(武士)'라는 존재의 발흥은 다름아닌 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전투에서는 영지에서 방목한 풍부한 말을 이용한 기마전법을 구사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휘어진 형태의 일본도를 최초로 만들게 했다고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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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는 헤이안 중기의 간토(關東)의 호족이다.간무(桓武) 천황으로부터 최초로 다이라(平)라는 성씨를 사성받은 가즈사와라(葛原) 친왕의 손자 다카모치왕(高望王)의 셋째 아들인 다이라노 요시마사(平良將)의 적자로서, 간무 천황의 5세 손이다. 시모우사(下總), 히타치(常陸)에 걸쳐 세거하고 있던 다이라 일족간의 항쟁을 끝내는 간토 전역을 휩쓴 대전쟁으로까지 확산시켰으며, 고쿠가(國衙, 관아)를 습격해 고쿠시의 인끈을 빼앗고 마침내 교토의 조정에 맞서는 독자적인 천황으로서 즉위하여 '신황(新皇)'이라 자칭, '조적(朝敵)'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황으로 즉위하고 불과 두 달 만에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鄕)ㆍ다이라노 사다모리(平貞盛) 등에게 토벌당했다(죠헤이承平ㆍ덴교天慶의 난) 사후 간다 진쟈를 비롯한 여러 진쟈에 모셔졌으며, 신으로 모셔지게 된 뒤에는 간다묘진(神田明神)이라 불렸다.
  •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는 헤이안 중기의 간토(關東)의 호족이다.간무 천황(桓武天皇)으로부터 최초로 다이라(平) 성을 하사받은 가즈사와라 친왕(葛原親王)의 손자 다카모치 왕(高望王)의 셋째 아들인 다이라노 요시마사(平良將)의 적자로써, 간무 천황의 5세 손이다. 시모우사(下總), 히타치(常陸)에서 대대로 살아온 다이라 일족의 항쟁을 끝내는 간토 전역을 휩쓴 대전쟁으로까지 확산시켰으며, 고쿠가(國衙, 관아)를 습격해 지방관의 인끈을 빼앗고 마침내 교토의 조정에 맞서는 독자적인 천황으로 즉위, '신황(新皇)'이라 자칭함으로써 '조적(朝敵)'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즉위 두 달 만에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鄕)ㆍ다이라노 사다모리(平貞盛) 등에게 토벌당했다(죠헤이承平ㆍ덴교天慶의 난) 사후 간다 진쟈를 비롯한 여러 진쟈에 모셔졌으며, 신으로 모셔지게 된 뒤에는 간다 묘진(神田明神)이라 불렸다. '무사(武士)'라는 존재의 발흥은 다름아닌 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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