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 작전(영어: Invasion of Normandy)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반도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1944년 6월 6일 벌인 상륙 작전으로, 작전명은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이다. 그동안 북아프리카와 시실리, 이탈리아 본토에서 경험을 쌓은 미군과 오랫동안 대륙 진공을 준비해온 영국이 본격적으로 벌인 유럽 진공의 시작이었으며, 소련 입장에서는 그들이 요구한 이른바 '제2전선'의 시작이었다.상륙작전은 대량의 인원과 물자를 영불해협을 횡단하는 항해를 통해 수송되어야 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지역은 그 폭이 무려 50 마일로서 이 넓은 해안은 5개의 작전 구역으로 구분이 되었다. 각 작전 구역에는 작전 명칭이 부여되었는데 유타(Utah), 오마하(Omaha), 골드(Gold), 주노(Juno), 그리고 소드(Sword)였다.· 연합군의 상륙 계획미군과 영국군 캐나다 군이 각각 담당한 해안선의 침공 구역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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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망디 상륙 작전(영어: Invasion of Normandy)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반도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1944년 6월 6일 벌인 상륙 작전으로, 작전명은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이다. 그동안 북아프리카와 시실리, 이탈리아 본토에서 경험을 쌓은 미군과 오랫동안 대륙 진공을 준비해온 영국이 본격적으로 벌인 유럽 진공의 시작이었으며, 소련 입장에서는 그들이 요구한 이른바 '제2전선'의 시작이었다.상륙작전은 대량의 인원과 물자를 영불해협을 횡단하는 항해를 통해 수송되어야 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지역은 그 폭이 무려 50 마일로서 이 넓은 해안은 5개의 작전 구역으로 구분이 되었다. 각 작전 구역에는 작전 명칭이 부여되었는데 유타(Utah), 오마하(Omaha), 골드(Gold), 주노(Juno), 그리고 소드(Sword)였다.· 연합군의 상륙 계획미군과 영국군 캐나다 군이 각각 담당한 해안선의 침공 구역은 아래와 같다. 미군 1군은 73,000명의 병력으로 오마하와 유타, 두 개의 해안 목표를 공격했는데 이 병력 중 15,600명은 공수 병력이었다.오마하 해안 : 미군 5군단- 1사단과 29사단 유타 해안 : 미군 7군단 -4 사단 90사단의 359 RCT. 101 공수사단과 82사단의 상륙 해안 후방 내륙 강하, 영국군 2군이 이 구간의 일부를 담당하였다. 6 공수 사단 7,900명이 침공 구역 좌측에 투하되었다 소드 해안 : 영국군 코만도 부대의 2개 여단, 1군단의 3 사단과 27 기갑 여단 주노 해안 : 캐나다 1군단- 캐나다 3사단, 캐나다 2 기갑여단, 영국군 제 4 코만도 부대 골드 해안 : 영국군 30군단의 3 사단. 캐나다군 1개 기갑여단· 독일군의 방어 계획한편 연합군 침공에 대비해서 독일은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원수를 대서양 해안 방어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방어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독일은 대서양 연안에 걸쳐 4년 동안 교통호와 화력 지원 요새와 벙커들로 바느질로 조밀하게 누빈듯한 방어선을 만들었다.독일군의 최초 방어선은 영불 해협이었다. 영국이 영국 본토 공격을 노리는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나폴레옹의 해군을 분쇄한 천연의 장애물이다. 이제는 그 반대로 독일군이 활용하게 된 것이다.두 번째의 방어선은 해안이다. 히틀러는 총통 명령 51호로서 벨기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뻗쳐 있는 이 해안지대를 ‘대서양 방벽’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요새화하라고 명령했다. 방어공사가 집중된 곳은 바로 영국과 프랑스가 가장 가까운 도버해협의 해안 쪽이었다. 즉 앞에서 말한 기만 작전이 행해진 칼레 해안이었다.롬멜은 상륙작전은 만조(滿潮)때 감행되리라고 판단하고 이 지역을 콘크리트 벙커와 포대와 기관총 진지, 그리고 철조망을 밀집시켰고 해변에는 상륙정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수천 개의 방어물과 수만 개의 지뢰를 매설하였다.연합군은 방비가 엄중한 칼레를 공격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조금 더 떨어진 독일 7군과 15군의 전투 지경선이 있는 노르망디를 상륙 예정지로 선택했다. 침공이 발발하면 두 독일 군(軍) 사이에 책임 전투 구역을 두고 큰 혼선이 있기를 바라는 희망 사항도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병력 배치연합군이 상륙 작전을 감행한 노르망디 상륙지점은 4개의 독일군 사단이 점령하고 있는 곳이었다.716 독일 보병사단은 상륙 해안의 최동단(最東端)이었다. 이곳에는 영국군과 캐나다군이 상륙할 예정이었다. 716 보병사단은 신체적으로 약한 독일병사들과 다른 나라들에서 징병한 병사들, 그리고 소련군 포로들로 포함 잡다한 외국인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 전투력을 의심받고 있었다.오마하 해안에는 독일 정예 352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 사단 병사들은 대소 전쟁의 동부전선에서 실전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았었다. 이 정예 사단이 방어하던 오마하 해안을 공격했었던 미군 병사들의 피해율이 가장 높았었다.해안으로 뻗어 나온 코탕탱(Contentin) 반도 내륙에는 루프트바페 소속의 91공수 사단이 주둔했다(독일 공군인 루프트바페는 보병 전투 사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709 보병 사단은 코탕탱 반도 동쪽과 북쪽 해변에 배치되어 있었다.기타 노르망디 해안 인근 주변 지역에 주둔한 부대들을 여기 소개해보면, 243 보병 사단은 코탕탱 반도의 서쪽 해안을 방비했었고, 711사단은 페이 드 코(Pays de Caux)의 서쪽 지역 방어를 맡았었고, 30기동 여단은 예비로 주둔하고 있었다. 30기동 여단은 아주 독특한 부대로서 모두 자전거로 이동하는 기동 부대였다.독일군의 기갑 예비군에 대해서는 특기할 필요가 있다. 롬멜은 상륙 저지 부대로서 최고 유효 수단인 기계화 사단들의 사용을 두고 집단군 사령부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 집단군 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는 순수하게 관리의 편의성 때문에 휘하 서부 기갑 집단군 부대들을 레오 게이르 폰 슈베펜부르그(Geyr von Schweppenburg) 장군의 휘하에 두고 있었는데 이 집단군은 후에 제 5 기갑군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5 기갑군은 노르망디 방어를 위해서 다시 재배치 되게 되었다.아프리카에서 실전 경험을 풍부히 쌓은 롬멜은 연합군의 항공력이 훨씬 우세하며 전투가 발발하면 기갑부대의 이동에 막대한 장애가 발생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갑부대들은 이동거리가 짧은 해안으로 가능한 한 가까운 지역에 배치되기를 강하게 요청했다. 그는 침공 첫 날 해안에서 적의 상륙을 저지할 한 개 기갑사단이 적이 해안에 교두보를 설치가 완료된 침공 삼일 째 되는 날 반격에 나선 3개 기갑 사단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게이르는 기갑군은 파리와 루엥의 중간 지점에 중점 위치해 있다가 적의 교두보가 확인되면 기갑군을 집중 투입해서 이를 궤멸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기갑의 운용을 두고 갈등을 빚다가 이 문제를 히틀러에게 직접 중재해주도록 하기로 하였다.히틀러는 그의 버릇대로 양쪽 다 만족하지 못할 중재안을 내놓았다. 롬멜에게는 단지 3개 기갑 사단만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이 3개 사단으로 연합군이 상륙할 전 해안선을 커버하기는 불가능하였다. 나머지 사단들은 ‘OKW 예비대‘라는 명칭을 주고 게이르의 휘하에 두고 적의 상륙 공격이 있을 시에 반격하도록 했는데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사용할 수 있는 사단은 단 3개 사단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 4개 사단들은 연합군이 남부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상륙할 경우에 출동하도록 하였다.· 히틀러의 실수히틀러는 예의 버릇대로 집중할 병력을 분산시키는 큰 실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쁜 결정은 게이르 휘하의 OKW 예비대 3개 사단을 출동시킬 때는 히틀러의 직접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었다. 연합군이 상륙작전을 개시할 때인 6월 6일에는 OKW 예비대 전차 사단장들은 히틀러의 지시가 없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날 히틀러는 깨우지 말라는 지시를 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그의 부관들은 감히 그의 엄명을 무시하고 그를 깨울 수가 없었다.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프랑스내의 기갑부대들은 침공이 개시되었을 때 롬멜이 구상하던 바와는 동떨어진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1944년 6월 6일부터 1944년 7월 중순까지 이어진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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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Day:
  • 미국: 1,465명 사망, 5,138명 부상, 실종 및 포로;
  • 나치 독일: 9,000여 명 사상 및 포로
  • 노르망디 작전 이후 7월 24일까지
  • 영국: 2,700명 사망, 부상 및 포로
  • 총 사상자 113,059명
  • 총 사상자 120,000명
  • 캐나다: 500명 사망, 621명 부상 및 포로
  • 합계: 총 10,424명 사상 및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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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2,700명 사망, 부상 및 포로
  • 총 사상자 113,059명
  • 총 사상자 120,000명
  • 캐나다: 500명 사망, 621명 부상 및 포로
  • 합계: 총 10,424명 사상 및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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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란드 서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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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군의 상륙작전 성공. 대륙 진공 교두보 확보
  • 연합군의 상륙작전 성공. 대륙 진공 교두보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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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000명 (1944년 7월 4일 기준)
  • 380,000명 (1944년 7월 23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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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전 중 가장 피해가 심했던 오마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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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마일즈 뎀프시
  • 미하엘 비트만†
  • 버나드 몽고메리
  • 버트럼 램지
  • 아서 테더
  • 에르빈 롬멜
  • 오마 브래들리
  • 트래퍼드 리맬러리
  • 프리드리히 돌만
  • 프리츠 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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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망디 상륙 작전(영어: Invasion of Normandy)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반도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1944년 6월 6일 벌인 상륙 작전으로, 작전명은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이다. 그동안 북아프리카와 시실리, 이탈리아 본토에서 경험을 쌓은 미군과 오랫동안 대륙 진공을 준비해온 영국이 본격적으로 벌인 유럽 진공의 시작이었으며, 소련 입장에서는 그들이 요구한 이른바 '제2전선'의 시작이었다.상륙작전은 대량의 인원과 물자를 영불해협을 횡단하는 항해를 통해 수송되어야 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지역은 그 폭이 무려 50 마일로서 이 넓은 해안은 5개의 작전 구역으로 구분이 되었다. 각 작전 구역에는 작전 명칭이 부여되었는데 유타(Utah), 오마하(Omaha), 골드(Gold), 주노(Juno), 그리고 소드(Sword)였다.· 연합군의 상륙 계획미군과 영국군 캐나다 군이 각각 담당한 해안선의 침공 구역은 아래와 같다.
  •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1944년 6월 6일부터 1944년 7월 중순까지 이어진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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