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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봉(金枓奉, 1889년 2월 16일 ~ 1961년?)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한글학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한글학자이다. 구한말기에는 한글학자 주시경의 수제자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한글 사전인 《조선말본》과 《깁더 조선말본》의 저자였으며 《말모이》의 공저자 중 한사람이다.중국에서 학자 활동과 무장투쟁 활동을 하다가 1935년 김규식,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창당 조직하였다. 1940년 이후 화북으로 가서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으로 추대되었고, 광복 뒤에는 38선 이북으로 귀환, 1948년 4월의 남북협상에 참여하였고 북한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라는 것은 조선의 심장부이니 우리 몸에 심장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 심장을 장악하고 8월까지는 기어코 통일 정부를 구성하자며 한국전쟁에 동조했다. 1958년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확한 사망 시점은 미상이다.1927년 임시정부 요인 백범 김구의 처 최준례가 죽자 정성껏 그의 묘비명을 지어주었는데, 대가 없이 써 주었다. 또한 최준례의 묘비명은 숫자나 한자(漢字)를 쓰지 않고 순 한글로 묘비명을 써서 화제가 되었다. 한편 상하이에서 그의 첩이었던 여성이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인 김진익과 불륜, 임신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일로 김진익과는 원수가 되었다. 1946년 10월부터 1948년 9월까지 김일성종합대학의 초대 총장이기도 하다. 약산 김원봉의 첫째 부인 박차정이 그의 외조카였다. 경상남도 기장군 기장읍 출생, 호는 백연(白淵)·백련(帛連)이고, 별명은 태항산의 호랑이였다.
- 김두봉(金枓奉, 1889년 2월 16일 ~ 1961년?)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한글학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한글학자이다. 경상남도 기장군 기장읍 출생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백연(白淵)·백련(帛連)이며, 별명은 '태항산의 호랑이'였다.구한말기에는 한글학자 주시경의 수제자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한글 사전인 《조선말본》과 《깁더 조선말본》의 저자였으며 《말모이》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이다.중국에서 학자 활동과 무장투쟁 활동을 하다가 1935년 김규식,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창당 조직하였다. 1940년 이후 화북으로 가서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으로 추대되었고, 광복 뒤에는 38선 이북으로 귀환, 1948년 4월의 남북협상에 참여하였고 북한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46년 10월부터 1948년 9월까지 김일성종합대학의 초대 총장이기도 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라는 것은 조선의 심장부이니 우리 몸에 심장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 심장을 장악하고 8월까지는 기어코 통일 정부를 구성하자며 한국 전쟁에 동조했다. 1958년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확한 사망 시점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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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봉(金枓奉, 1889년 2월 16일 ~ 1961년?)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한글학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한글학자이다. 구한말기에는 한글학자 주시경의 수제자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한글 사전인 《조선말본》과 《깁더 조선말본》의 저자였으며 《말모이》의 공저자 중 한사람이다.중국에서 학자 활동과 무장투쟁 활동을 하다가 1935년 김규식,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창당 조직하였다. 1940년 이후 화북으로 가서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으로 추대되었고, 광복 뒤에는 38선 이북으로 귀환, 1948년 4월의 남북협상에 참여하였고 북한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라는 것은 조선의 심장부이니 우리 몸에 심장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 심장을 장악하고 8월까지는 기어코 통일 정부를 구성하자며 한국전쟁에 동조했다. 1958년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 김두봉(金枓奉, 1889년 2월 16일 ~ 1961년?)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한글학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한글학자이다. 경상남도 기장군 기장읍 출생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백연(白淵)·백련(帛連)이며, 별명은 '태항산의 호랑이'였다.구한말기에는 한글학자 주시경의 수제자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한글 사전인 《조선말본》과 《깁더 조선말본》의 저자였으며 《말모이》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이다.중국에서 학자 활동과 무장투쟁 활동을 하다가 1935년 김규식,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창당 조직하였다. 1940년 이후 화북으로 가서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으로 추대되었고, 광복 뒤에는 38선 이북으로 귀환, 1948년 4월의 남북협상에 참여하였고 북한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46년 10월부터 1948년 9월까지 김일성종합대학의 초대 총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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