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진(金嘉鎭, 1846년 음력 1월 29일 ~ 1922년 양력 7월 4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독립운동가로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동농(東農), 본관은 안동이다.병자호란때 강화성에서 순절한 문충공 선원 김상용의 11대손으로 이조참판 수북 김광현의 직계후손이며 예조판서 김응균의 아들이다.안동김씨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서얼이었던 탓에 나이 사십이 넘어 뒤늦게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외교통상, 통신 등 실용적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근대사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에 두루 능통했다.판사대신 주일공사(駐日公使)를 역임하고 갑오경장때 군국기무처회의원(軍國機務處會議員)이 되어 주도적으로 내정개혁에 참여했고, 신문물도입 및 제도 개혁에 앞장서면서 독립협회 창설등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50세의 나이로 대한제국의 대신이 되어 서얼로서 종1품의 의정반열에 오르는 입지전적 인물이된다.대한협회회장으로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와 대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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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가진(金嘉鎭, 1846년 음력 1월 29일 ~ 1922년 양력 7월 4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독립운동가로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동농(東農), 본관은 안동이다.병자호란때 강화성에서 순절한 문충공 선원 김상용의 11대손으로 이조참판 수북 김광현의 직계후손이며 예조판서 김응균의 아들이다.안동김씨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서얼이었던 탓에 나이 사십이 넘어 뒤늦게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외교통상, 통신 등 실용적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근대사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에 두루 능통했다.판사대신 주일공사(駐日公使)를 역임하고 갑오경장때 군국기무처회의원(軍國機務處會議員)이 되어 주도적으로 내정개혁에 참여했고, 신문물도입 및 제도 개혁에 앞장서면서 독립협회 창설등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50세의 나이로 대한제국의 대신이 되어 서얼로서 종1품의 의정반열에 오르는 입지전적 인물이된다.대한협회회장으로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와 대립했다. 일제강점후 조선귀족령에 의해 남작작위가 주어졌으나, 이후 대외활동을 하지않았다.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항일 비밀결사 조선민족대동단의 총재로 추대되었다.의친왕 망명기도사건에 가담하였고, 자신 역시 대한제국의 대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계속했다.김가진의 망명은 상해임시정부에는 큰 힘이 되었고 일제에게는 큰 타격이었다.대한민국임시정부에 고문으로 참여하였다. 아호가 동농이므로 동농 김가진으로 부른다.
  • 김가진(金嘉鎭, 1846년 음력 1월 29일 ~ 1922년 양력 7월 4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독립운동가로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동농(東農), 본관은 안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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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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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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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가진(金嘉鎭, 1846년 음력 1월 29일 ~ 1922년 양력 7월 4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독립운동가로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동농(東農), 본관은 안동이다.병자호란때 강화성에서 순절한 문충공 선원 김상용의 11대손으로 이조참판 수북 김광현의 직계후손이며 예조판서 김응균의 아들이다.안동김씨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서얼이었던 탓에 나이 사십이 넘어 뒤늦게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외교통상, 통신 등 실용적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근대사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에 두루 능통했다.판사대신 주일공사(駐日公使)를 역임하고 갑오경장때 군국기무처회의원(軍國機務處會議員)이 되어 주도적으로 내정개혁에 참여했고, 신문물도입 및 제도 개혁에 앞장서면서 독립협회 창설등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50세의 나이로 대한제국의 대신이 되어 서얼로서 종1품의 의정반열에 오르는 입지전적 인물이된다.대한협회회장으로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와 대립했다.
  • 김가진(金嘉鎭, 1846년 음력 1월 29일 ~ 1922년 양력 7월 4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독립운동가로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동농(東農), 본관은 안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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