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는 철기 시대 후기에 짐바브웨 왕국의 수도였던 폐허 도시이다. 이 유적은 11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어 14세기까지 지어졌는데, 그 넓이는 722 헥타르(1780 에이커)에 달해 전성기에는 18,000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짐바브웨 군주의 왕궁으로서 기능했으며 그 정치적 권력의 소재지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벽에 있는데, 모르타르를 전혀 쓰지 않고 돌벽을 5 미터 높이까지 쌓아올렸다. 세월이 흐르자 도시는 결국 버려졌으며, 폐허로 영락했다.폐허는 1871년에 이 지역을 탐사하던 유럽인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유적은 고고학적으로 큰 논쟁에 휩싸였는데, 당시 로디지아 정부 측에서 흑인들이 이런 건축물을 지을 리 없다고 고고학자들에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짐바브웨 정부에 의해 국정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나라 이름도 이 유적에서 따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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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는 철기 시대 후기에 짐바브웨 왕국의 수도였던 폐허 도시이다. 이 유적은 11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어 14세기까지 지어졌는데, 그 넓이는 722 헥타르(1780 에이커)에 달해 전성기에는 18,000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짐바브웨 군주의 왕궁으로서 기능했으며 그 정치적 권력의 소재지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벽에 있는데, 모르타르를 전혀 쓰지 않고 돌벽을 5 미터 높이까지 쌓아올렸다. 세월이 흐르자 도시는 결국 버려졌으며, 폐허로 영락했다.폐허는 1871년에 이 지역을 탐사하던 유럽인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유적은 고고학적으로 큰 논쟁에 휩싸였는데, 당시 로디지아 정부 측에서 흑인들이 이런 건축물을 지을 리 없다고 고고학자들에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짐바브웨 정부에 의해 국정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나라 이름도 이 유적에서 따 붙인 것이다. ‘그레이트’라는 말은 이 유적을 짐바브웨 하이펠트 고지대에 산재해 있는 숱한 작은 폐허들과 구분해 준다. 남부 아프리카에는 그레이트 짐바브웨 말고도 짐바브웨의 붐부시(Bumbusi), 모잠비크의 마니이케니(Manyikeni) 등 모르타르 없이 쌓은 석조 유적이 200여개 더 존재하지만,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그 중 단연 가장 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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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는 철기 시대 후기에 짐바브웨 왕국의 수도였던 폐허 도시이다. 이 유적은 11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어 14세기까지 지어졌는데, 그 넓이는 722 헥타르(1780 에이커)에 달해 전성기에는 18,000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짐바브웨 군주의 왕궁으로서 기능했으며 그 정치적 권력의 소재지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벽에 있는데, 모르타르를 전혀 쓰지 않고 돌벽을 5 미터 높이까지 쌓아올렸다. 세월이 흐르자 도시는 결국 버려졌으며, 폐허로 영락했다.폐허는 1871년에 이 지역을 탐사하던 유럽인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유적은 고고학적으로 큰 논쟁에 휩싸였는데, 당시 로디지아 정부 측에서 흑인들이 이런 건축물을 지을 리 없다고 고고학자들에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짐바브웨 정부에 의해 국정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나라 이름도 이 유적에서 따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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