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당사(일본어: 遣唐使 (けんとうし))는, 일본 나라 시대(710년~794년)와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에 일본 조정에서 당(唐, 618년~907년) 왕조에 파견했던 사절이다. 일본측 사료에는 당의 황제와 대등한 교역과 외교를 행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측 기록인 신·구《당서》에는 왜국이 당에 파견한 조공 사절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 견당사를 파견하기 이전에도 쇼토쿠 태자는 수(隋)에 견수사(일본어: 遣隋使 (けんずいし))와 유학승(留學僧)을 보냈다. 619년 중국에서는 수가 멸망하고 새로 당이 개창하였는데, 그때까지는 왜에서 중국으로 파견되던 사신을 견수사라 불렀었다. 당이 개창한 이후에도 사신 파견의 전통은 이어져, 견수사를 견당사로 개칭하고 당에 사신을 계속 파견하였다. 이후 간표 6년(894년),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의 건의에 따라 폐지되었다. 한편 중국측에 파견되었던 견당사의 묘가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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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견당사(일본어: 遣唐使 (けんとうし))는, 일본 나라 시대(710년~794년)와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에 일본 조정에서 당(唐, 618년~907년) 왕조에 파견했던 사절이다. 일본측 사료에는 당의 황제와 대등한 교역과 외교를 행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측 기록인 신·구《당서》에는 왜국이 당에 파견한 조공 사절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 견당사를 파견하기 이전에도 쇼토쿠 태자는 수(隋)에 견수사(일본어: 遣隋使 (けんずいし))와 유학승(留學僧)을 보냈다. 619년 중국에서는 수가 멸망하고 새로 당이 개창하였는데, 그때까지는 왜에서 중국으로 파견되던 사신을 견수사라 불렀었다. 당이 개창한 이후에도 사신 파견의 전통은 이어져, 견수사를 견당사로 개칭하고 당에 사신을 계속 파견하였다. 이후 간표 6년(894년),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의 건의에 따라 폐지되었다. 한편 중국측에 파견되었던 견당사의 묘가 발견되기도 했다.
  • 견당사(일본어: 遣唐使 (けんとうし))는, 일본 나라 시대(710년~794년)와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에 일본 조정에서 당(唐, 618년~907년) 왕조에 파견했던 사절이다. 일본측 사료에는 당의 황제와 대등한 교역과 외교를 행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측 기록인 신·구《당서》에는 왜국이 당에 파견한 조공 사절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 견당사를 파견하기 이전에도 쇼토쿠 태자는 수(隋)에 견수사(일본어: 遣隋使 (けんずいし))와 유학승(留學僧)을 보냈다. 619년 중국에서는 수가 멸망하고 새로 당이 개창하였는데, 그때까지는 왜에서 중국으로 파견되던 사신을 견수사라 불렀었다. 당이 개창한 이후에도 사신 파견의 전통은 이어져, 견수사를 견당사로 개칭하고 당에 사신을 계속 파견하였다. 이후 간표 6년(894년),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의 건의에 따라 폐지되었다. 한편 중국측에 파견되었던 견당사의 묘가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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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견당사(일본어: 遣唐使 (けんとうし))는, 일본 나라 시대(710년~794년)와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에 일본 조정에서 당(唐, 618년~907년) 왕조에 파견했던 사절이다. 일본측 사료에는 당의 황제와 대등한 교역과 외교를 행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측 기록인 신·구《당서》에는 왜국이 당에 파견한 조공 사절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 견당사를 파견하기 이전에도 쇼토쿠 태자는 수(隋)에 견수사(일본어: 遣隋使 (けんずいし))와 유학승(留學僧)을 보냈다. 619년 중국에서는 수가 멸망하고 새로 당이 개창하였는데, 그때까지는 왜에서 중국으로 파견되던 사신을 견수사라 불렀었다. 당이 개창한 이후에도 사신 파견의 전통은 이어져, 견수사를 견당사로 개칭하고 당에 사신을 계속 파견하였다. 이후 간표 6년(894년),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의 건의에 따라 폐지되었다. 한편 중국측에 파견되었던 견당사의 묘가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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