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구치 다카오(일본어: 川口 孝夫 (かわぐち たかお), 1950년 4월 13일 ~ )는 전 일본의 유도 선수로 라이트급에서 활약하였다.히로시마 시에서 태어난 가와구치는 지방 유도 강사를 지낸 부친의 지도 아래 5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하였다.고등학생 시절에 그는 전국 고교 선수권을 우승하고 1969년 메이지 대학에 입학하였다. 1971년 세계 선수권에서 훗날의 올림픽 챔피언 노무라 도요카즈를 꺾고 우승하였다.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라이트급 종목에 나간 가와구치는 첫 라운드와 두번째 라운드에서 빠를 승리를 거둔 후, 세번째 라운드에서 몽골의 바카바 부이다를 향하였다. 그라운드 핀에서 부이다를 빠져 나가려고 할 때에 자신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럼에 불구하고 나머지 매치에 버티면서 준결승전에 도달하였다.준결승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영익을 요코-시호-가마테 기술로 꺾고 다시 결승전에서 부이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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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와구치 다카오(일본어: 川口 孝夫 (かわぐち たかお), 1950년 4월 13일 ~ )는 전 일본의 유도 선수로 라이트급에서 활약하였다.히로시마 시에서 태어난 가와구치는 지방 유도 강사를 지낸 부친의 지도 아래 5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하였다.고등학생 시절에 그는 전국 고교 선수권을 우승하고 1969년 메이지 대학에 입학하였다. 1971년 세계 선수권에서 훗날의 올림픽 챔피언 노무라 도요카즈를 꺾고 우승하였다.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라이트급 종목에 나간 가와구치는 첫 라운드와 두번째 라운드에서 빠를 승리를 거둔 후, 세번째 라운드에서 몽골의 바카바 부이다를 향하였다. 그라운드 핀에서 부이다를 빠져 나가려고 할 때에 자신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럼에 불구하고 나머지 매치에 버티면서 준결승전에 도달하였다.준결승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영익을 요코-시호-가마테 기술로 꺾고 다시 결승전에서 부이다를 만났다. 이전의 매치에 비하여, 가와구치는 그를 고치 가리 기술로 빠르게 매트에 올려놓아 39초 만에 가미-시호-가마테 기술과 우승하여 금메달 획득에 성공하였다. (바카바 부이다는 후에 도핑 테스트에 떨어져 은메달을 박탈당하였다.) 은퇴 후, 부친의 뒤를 이어 가와구치 도장의 총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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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와구치 다카오(일본어: 川口 孝夫 (かわぐち たかお), 1950년 4월 13일 ~ )는 전 일본의 유도 선수로 라이트급에서 활약하였다.히로시마 시에서 태어난 가와구치는 지방 유도 강사를 지낸 부친의 지도 아래 5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하였다.고등학생 시절에 그는 전국 고교 선수권을 우승하고 1969년 메이지 대학에 입학하였다. 1971년 세계 선수권에서 훗날의 올림픽 챔피언 노무라 도요카즈를 꺾고 우승하였다.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라이트급 종목에 나간 가와구치는 첫 라운드와 두번째 라운드에서 빠를 승리를 거둔 후, 세번째 라운드에서 몽골의 바카바 부이다를 향하였다. 그라운드 핀에서 부이다를 빠져 나가려고 할 때에 자신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럼에 불구하고 나머지 매치에 버티면서 준결승전에 도달하였다.준결승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영익을 요코-시호-가마테 기술로 꺾고 다시 결승전에서 부이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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